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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으로 남긴 왕실 행사 … 중국·일본에도 없는 ‘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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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외규장각 의궤 프랑스 출발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 소장되어온 외규장각 도서 296권 중 75권이 13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샤를드골 공항의 화물 운송장 안으로 옮겨지고 있다. 5개의 나무 상자에 포장된 도서들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OZ502편)에 실려 한국으로 보내졌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프랑스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儀軌)가 드디어 돌아온다. 약탈된 지 145년 만이다.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를 빠짐없이 기록한 의궤는 ‘기록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우선 전체 296권 중 1차분 75권이 14일 한국 땅을 밟는다. 유물 상자 5개 분량이다. 인천공항 세관 통관 수속을 거친 후 무진동차량에 실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된다. 역사적인 귀환이지만 조용히 수장고로 직행할 예정이다.

 일단 이번에 반환되는 외규장각 도서의 목록은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여가정책과 노정동 사무관은 “목록 선정은 프랑스 측에 일임했으며, 양국간 약정에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다”며 “이관이 완료되는 5월 말까지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초 국립중앙박물관은 1차분 반환에 맞춰 축하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4차분 이관이 모두 끝나는 5월 27일 이후로 미뤘다. 유물을 내어주는 프랑스국립도서관 측의 상실감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돌아온 유물은 박스째 수장고로 들어간다. 노 사무관은 “문화재는 통상 이관 후 24시간의 순응기간을 둬야 하기 때문에 훼손 방지를 위해서라도 현장에서 공개할 수 없다.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언론 보도용으로 국내에 있는 다른 의궤를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국내 학계에선 소유권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이라 외규장각 도서 연구에 제약이 있을 것을 우려해왔다. 그러나 이번 외규장각 도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관리 규정에 입각해 취급된다. 도서 촬영·복제·도록 제작·전시 등의 활용이 가능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다만 프랑스 소유이므로 국가문화재로는 지정할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향후 연구팀을 구성해 집중 연구 사업을 벌이고, 온라인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일반에 첫 선을 보이는 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7월 29일~9월 18일 개최될 예정된 환수문화재 특별전에서다.

 ◆296권 중 절반은 왕실 장례 다뤄=외규장각 도서는 대부분 조선 왕실 의궤류다. 의궤는 국가나 왕실의 중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필사본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발견되지 않는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외규장각 도서 296권 중 절반 가량은 왕실 장례에 관한 것이다. 왕과 왕비의 국장(國葬), 세자와 세자빈의 예장(禮葬), 출상 준비부터 무덤 조성과 3년상 과정을 정리한 의궤 등이다. 나머지 절반은 가례(嘉禮·왕실 혼례), 각종 잔치, 세자 책봉, 궁궐이나 성곽 정비 등을 기록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는 의궤 중에서도 최고급인 왕의 책, 즉 어람용(御覽用)이다. 조선시대 왕실 의궤는 한꺼번에 여러 부를 만들어 1권은 왕에게 올리고 나머지는 예조 등 국가 전례를 관장하는 기구와 강화도 태백산, 강원도 오대산 등의 사고에 보관했다. 어람용 의궤는 고급 종이인 초주지(草注紙)에 최고급 물감을 쓰고 비단 장정에 놋쇠 물림으로 철을 했다. 반면 분상용(分上用)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하는 용도)은 닥종이 저주지(楮注紙)를 쓰고 삼베 표지에 보통 쇠로 물림했다.

 외규장각 도서 중 분상용은 5권뿐이다. 특히 30권은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이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 등과 비교해도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일본 30권은 2005년 우리 정부와 프랑스가 함께 디지털화해 공유했다. 실물이 들어옴으로써 종이의 질·표지·물감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게 됐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이상언 특파원

인물의 수염까지 선명 … ‘반차도’ 거의 완벽하다
신병주 교수 일문일답

외규장각 도서 원본을 직접 본 이는 많지 않다. 신병주(사진)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2002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외규장각 의궤 실사에 참여했다. 2005년 유일본 30권의 디지털 작업의 자문도 맡았다. 그에게 외규장각 의궤의 학술적 가치를 물어봤다.

 -국내에 있는 의궤와 비교하면.

 “어람용 의궤는 30권을 제외하고는 국내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표지 장정부터 표기 방식까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실사해본 결과 반차도(班次圖·왕실 행사 그림)는 인물의 수염까지도 선명했다. 국내에 있는 반차도의 경우 가끔 생략된 그림도 눈에 띄는데 반해, 거의 완벽했다.”

 - 그 동안 유일본 30권은 디지털 파일로 연구해왔는데.

 “돌아오리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 디지털로라도 연구에 도움이 되게 하자고 진행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원본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으로 촬영된 것과 원본의 느낌은 당연히 다르다. 게다가 의궤는 지질, 표기방식, 물감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역사학은 물론 서지학·복식사·미술사 등 여러 분야에서 필요한 귀중한 자료다.”

 -원형이 훼손된 자료는 없나.

 “돌아오는 의궤 중 7종 12책을 제외하고는 표지가 개장(改裝)됐다. 아마 프랑스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물에 젖거나 한 걸 일괄적으로 손 댄 것 같다.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12책이 원자료로서의 가치는 더 높은 셈이다.”

 -반환 이후의 연구 계획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한다는 말은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의궤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통해 조선 왕실문화와 한국학의 수준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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