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전 경영진 상대 주주대표소송 항소심 승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일은행과 이 은행 소액주주들이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대출 책임과 관련, 은행의 구 경영진을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집단 주주대표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12부(재판장 오세빈 부장판사)는 4일 제일은행이 한보 특혜비리로 손해를 봤다며 이철수.신광식 전 행장과 이세선 전 전무, 박용이 전 상무 등 제일은행 전직 임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10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모씨 등 이 은행 소액주주 56명이 낸 소송에 대해서는 "지분이 모두 소각된 만큼 원고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이번 판결은 소액주주들이 97년 6월 이 전 행장 등을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집단 주주대표소송에서 98년 7월 1심 법원이 원고 전액 승소 판결을 내린 뒤 지난해 7월 소액주주들의 지분이 소각될 위기에 처하자 제일은행이 공동소송참가 형태로 원고에 참여, 소송가액을 10억원을 변경한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은 제일은행이 항소심 진행중에 원고로 참여한데 대해 '현행법상 회사는 소액주주들의 대표소송에 공동소송참가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처럼 대표소송 진행 도중 주주들의 지분이 소각될 경우에는 권리귀속 주체인 회사가 당사자로서 주주대표소송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들이 대출업무시 신용이나 회수가능성, 담보 등을 살펴 안전한 경우에만 대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한보철강에 장기간 거액을 대출한 것은 이사의 임무를 회피한 것"이라는 1심 판결 취지를 그대로 인정했다.

주주대표소송은 일정 지분 이상을 가진 소액주주들이 경영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회사 이익을 해친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는 견제장치로,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배상금이 당사자가 아닌 회사로 귀속되는 공익적인 성격의 소송으로 일본의 경우연간 200∼300건이 청구되는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돼 있다.

김씨 등 소액주주들은 97년 6월 "제일은행측이 한보그룹의 당진제철소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 여신심사 임무 등을 소홀히 해 회사의 손실이 발생한 만큼 책임을 져야한다"며 참여연대를 통해 400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 98년 7월 1심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지난해 7월 지분이 소각위기에 처하자 제일은행이 공동소송참가인으로 주주대표소송에 참가했다. [서울=연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