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명사의 조언] 지휘자 금난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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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37년 동안 포디움(지휘자가 올라가는 단)을 지켜온 ‘금마에’ 금난새(64)씨를 만났다. 그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했지만 인터뷰 내내 한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곱게 빗어 넘긴 은발을 반짝이며 “내 유쾌한 에너지가 바로 아직도 연간 150회의 지휘 일정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올 1월엔 25개 대학에서 모인 비(非)음대 학생 100여 명으로 이뤄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KUKO’를 이끌고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올랐다. 젊은이들의 멘토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를 만나 청소년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글=설승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금난새씨는 “좋은 리더는 자신이 지휘하는 장단에 공동체 일원이 한데 어울려 즐겁게 춤추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사진=김경록 기자]

-대식구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잘 이끌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비결은.

“간단하다. 단원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면 된다. 특히 오케스트라는 하모니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조화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화를 내지 않고 따라 줄까’를 궁리한다. 사람이 악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가 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인내심을 갖고 부드럽게 설득한다.”

-지휘를 27세에 시작했다. 다소 늦은 편인 것 같은데.

“지휘는 어릴 때부터 꿈꿨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서울예고에도, 서울대에도 당시엔 지휘과가 없었다. 대신 작곡과에서 공부했다. 당연히 지휘를 가르쳐 줄 선생님도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늘 ‘어떻게 지휘를 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 서울 각 대학 음대에 다니는 고교 동창들을 모아 실내악단을 만들어 지휘를 조금씩 해 보며 실력을 키웠다. 27세가 되던 해 행사차 독일을 방문했을 때 무작정 베를린 국립음대를 찾아갔다. 지휘과 교수를 만난 뒤 그곳에서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나처럼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의지를 갖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소망을 발현할 기회를 만들기 바란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외모와 달리 ‘돈키호테’형 인간이라는 평가가 있다.

“맞다. 보기와는 다르게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새로운 일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안주하기보다는 창조적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생각한다. 좋은 회사, 좋은 학교에 다니면 그곳의 이름 덕을 볼 때도 있고 분명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어딜 가든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곳으로 바꿔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2년에 12년 동안 일해 온 KBS 교향악단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떠나 당시 파산위기였던 수원시립교향악단에 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명함에 예술감독이란 직함과 함께 ‘CEO’라고 적혀 있는데.

“민영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와 경영을 함께하고 있다. 정부 지원금을 전혀 받지 않고도 잘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었다. 경영학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기업과 대중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기업과 대중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경영이 되더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창조적이고 유쾌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노력한다. 기업 후원을 받아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대학교를 방문하기도 하고 회사 로비에서 연주회도 연다. 창동에서는 천막극장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지금은 1년에 150회 청중을 만나는 오케스트라가 됐다.”

-한국 클래식 대중화에 한 획을 그었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가 러시아의 고전인 톨스토이 작품을 읽으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고맙게도 누군가 밤새 번역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어렵게만 느끼는 클래식에 보다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싶어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시작했다. 톨스토이 작품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러시아인인가? 아니다. 그 작품을 읽고 이해한 사람이다. 대중이 클래식 음악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그 사이를 이어 주고 싶었다.”

-청소년들이 장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꿔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을 배려해라. 지진이 난 일본을 보고 느낀 것 중 하나가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침착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지나갈 때 같이 소소한 일상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자.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는 똑똑한 두뇌만큼 배려가 필요하다. 사소한 것 같아 보이는 작은 배려가 모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남의 장단에 맞추거나 따라 하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 있는 장단을 만들어라. 내 둘째아들 이름이 ‘드무니’다. 세상에 ‘드문 이’, 즉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그런데 자기 장단에 취해 혼자서만 신나하는 리더가 과연 좋은 리더일까. 아니다. 자신이 지휘하는 장단에 공동체의 일원이 어울려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어야 좋은 리더다. 그러려면 창의성만큼 배려심이 필요하다. 독창적인 데다 배려심까지 있는 리더가 정말 멋진 리더다.”

지휘자 금난새는

1947년 부산 출생. 서울대 작곡과 졸업 후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KBS 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 수원시립교향악단 등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94년부터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어 지금까지 이어오는 등 한국의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앞장섰다. 현재 지휘자로 유라시안필하모닉과 인천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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