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짓말〉 통과시킨 이상한 심의기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얻었고 관객들은 볼 권리를 찾았다.' 영화 〈거짓말〉(장선우 감독)이 두 차례의 등급보류 판정 끝에 얻은 상영 허가(본보 30일자 22면 보도)가 갖는 의미는 우선 이렇게 요약된다.

포르노 논란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과도한 성표현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없었던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이 드디어 '관객의 몫' 으로 넘겨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영화 〈거짓말〉이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의 3차 재심에 들어갔을 때부터 극장계엔 비상이 걸렸다.

제작사인 신씨네(대표 신철)측이 '가능하다면 하루빨리 개봉시키겠다' 는 입장을 천명한 것. 상영이 허용될 경우 극장들은 미리 잡혀있던 상영 일정을 수정하고 개봉 준비에 본격 돌입해야 했기 때문에 등급위 결정을 눈앞에 두고 제작사엔 극장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무리할 정도로 급히 잡은 8일 개봉은 이 영화를 복제한 CD롬과 비디오가 불법으로 대량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에 골머리를 썩어온 제작사측의 고육지책이었다. '볼 사람은 이미 다 봤다' 는 소문이 났을 정도로 이 영화는 음란 비디오처럼 청소년 사이에 유통됐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등급외 전용관이 없는 상황에서 등급위가 내린 '보류' 결정이 오히려 불법유통을 부추겼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1.2차 심의 결정 당시 예측하지 못한 〈거짓말〉의 불법 유통 사태가 3차 심의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잇따라 등급보류 판정을 내리며 완고한 입장을 견지해온 등급위가 한발짝 뒤로 물러난 가장 큰 이유는 제작사인 신씨네가 그동안 등급위가 '문제' 로 지적해온 장면과 대사들을 수정했기 때문.

등급위는 지난 8.11월 이 영화에 대한 등급 분류 심의에서 "미성년자와의 변태적 성관계와 가학행위를 여과없이 묘사해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며 등급을 보류했던 것.

처음엔 '단 한 장면도 손상시키지 않겠다' 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던 제작사는 결국 여주인공이 교복을 입고 나와 '여고생' 신분을 드러내는 몇몇 장면들을 들어냈고, 정사 장면중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노골적인 대사도 줄여 원작보다 10분가량 짧아졌다.
그러나 정작 많은 이들이 문제의 핵심이 됐을 것이라고 여긴 성관계 묘사 장면에 대해서는 등급위측이 오히려 관대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과연 관객들은 〈거짓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제 국내 영화계는 〈거짓말〉이 개봉 결과로 얻어낼 흥행 성적과 관객의 반응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화제나 혹은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한 이들의 의견이 호평과 혹평으로 극단적으로 엇갈렸다는 사실이 이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