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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도 괜찮아 꿈 펼칠 수 있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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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수만이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장르가 연기자·모델·디자이너·아나운서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폴 포츠를 세계적 스타로 탄생시킨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한국판 ‘코리아 갓 탤런트’(tvN) 부산 예선에 한국의 폴 포츠를 꿈꾸는 참가자가 몰렸다. 이들의 쇼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영화감독 장진, 배우 송윤아,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부산=송봉근 기자]

SBS ‘기적의 오디션’ 참가자들. 예선 통과를 기도하고, 기타 실력을 뽐내고, 연기를 향한 갈망을 풀어헤쳤다(위에서부터).

#9일 오전 10시 부산 벡스코 SBS ‘기적의 오디션’ 예선 현장. 7개로 나눠진 부스 여기저기서 울음·고함·노랫소리가 들렸다. 즉흥연기 를 선보인 정수훈(28)씨는 “대전 예선에서 떨어지고 부산에 지원했다. 또 떨어지면 다음 주 대구 예선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 같은 지원자가 부산에만 2200여 명 몰렸다.

 #같은 날 오후 2시 tvN ‘코리아 갓 탤런트’ 2차 지역예선이 열린 부산 동래문화회관 대극장. 지난주 1차를 통과한 100여 팀과 개인 참가자들이 실력을 겨뤘다. 심사위원 박칼린씨는 “더 드라마틱한 안무를 기대한다”며 6인조 일렉트로닉댄스에 합격을 줬다. 지역예선 통과자들은 최종예선을 거쳐 생방송 무대에 오른다. 1위를 하면 상금 3억원을 받는다.

요즘 전국 대형 공연장은 주말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각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마련한 오디션 지역예선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부산은 9일 동시에 열린 ‘기적의 오디션’ ‘코리아 갓 탤런트’ 외에 24일엔 ‘슈퍼스타K 3’ 지역예선이 열린다. 매회 수천 명이 몰리고 관련 교습학원 등록을 안내하는 명함이 돌기도 한다.

 무엇이 이들을 TV 오디션으로 이끄는가. 입 모아 말하는 것은 ‘꿈의 실현, 끼를 펼치고 싶은 욕망’이다. ‘기적의 오디션’에 응시한 서효진(중3)양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 가수든 연기자든 무대에서 내 끼를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2라고만 밝힌 한 여학생은 “엄마는 중소기업에 취직해 평범하게 살라고 하지만, 나는 튀고 싶다. 어차피 공부로는 안 될 것 아니냐”고 했다. 출산 후 83일째라는 이나영(26)씨는 “결혼하고 애 낳으며 접었던 연기자의 꿈을 이번 기회에 펼치고 싶다”고 했다. 제도교육에서 해소하지 못한 갈망을 안고 무대로, TV로 몰린다.

 앞선 프로그램의 영향도 크다. 특히 환풍기 수리공 출신으로 지난해 ‘슈퍼스타K 2’에서 우승한 허각의 성공 스토리가 기폭제가 됐다. 대학생 정보섭(23)씨는 “키도 작고 배경도 없는 사람이 실력만으로 우승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주성(30)씨는 “서울에는 기획사 오디션이 많지만 지방은 거의 없다. 방송사에서 판을 벌일 때 눈에 띄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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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션 우승은 거액의 상금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약속한다. 1등 상금이 SBS ‘기적의 오디션’은 2억원, ‘코리아 갓 탤런트’는 3억원이다. ‘슈퍼스타K 3’는 음반제작비 2억원을 포함해 총 5억원대다. 거제도에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임승준(22)씨는 “열심히 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더라. 내 선에서 가난을 끊고 싶다. 나보다 못 누린 부모님에게 이제라도 뭔가 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참가 그 자체가 TV 노출을 통해 ‘스펙(실용적 이력)’이 되는 이점도 있다. 수원에서 달려와 응시했다는 레크리에이션 MC 배원진(34)씨는 “톱10에 들기만 해도 유명해질 테니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오디션 프로는 사실 ‘승자 독식의 게임’ ‘시청률 경쟁의 산물’이다. 참가자 대부분은 시청자의 시선에 발가벗겨지고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흔치 않은 기회를 회피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고교 야구선수를 하다 부상 때문에 진로를 바꾼 김진민(20)씨는 “어느 분야나 99%는 떨어지고 1%만 성공한다. 안 되더라도 내 꿈에 도전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부친 김선곤씨도 “아빠의 능력보다 아이의 실력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오디션에선 인맥을 따지지 않으니 이런 기회라도 밀어 주고 싶다”고 했다.

 오디션 열풍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 ‘반짝 스타’를 양산하고 음악산업이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종속된다는 비판이다. ‘고시 낭인’처럼 오디션을 찾아다니는 ‘오디션 낭인’을 양산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기적의 오디션’을 제작하는 코엔미디어 안인배 대표는 “2000년대 들어 기획사 위주로 신규 채용이 이뤄지면서 캐스팅 사기 등 부작용이 많았다. 열린 기회를 통해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디션 열기는 기업문화에 반영되기도 한다. 삼성은 15일부터 ‘슈퍼스타S’라는 이름으로 국내 임직원 19만3000명을 대상으로 사내 장기자랑에 돌입한다. 이처럼 지금 많은 한국인은 꿈을 파는 사회에 열광하고 있다.

부산=강혜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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