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 아줌마, 미안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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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10면

미야자키 미치코는 단골손님이었다. 일본 지바현의 야키니쿠 식당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그는 2주에 한 번 두 딸과 아들 이렇게 넷이 식당에 와서는 고기를 먹고 갔다. 거기까지는 다른 단골손님과 다른 점이 없다. 미치코가 특별한 것은 갈비 외에 순두부찌개를 꼭 주문해서, 그것도 항상 하나를 더 추가해서 먹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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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런 미치코를 ‘순두부 아줌마’라고 불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끼리는 늘 화제가 빈곤했다. 그런 우리에게 순두부 아줌마는 반가운 이야깃거리였다. 가령 아줌마의 첫사랑은 순두부를 좋아하던 남자임에 틀림없다, 아니다, 순두부를 좋아한 건 남편인데 죽었다, 남편 몫까지 한 그릇 더 먹는 것이다 등등.

나는 궁금한 걸 참지 못한다. 미치코가 추가 주문한 순두부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나는 물었다. “손님은 왜 꼭 두 그릇씩 드세요?” 아줌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맛있으니까요.”
식당은 고객 관리를 위해 포인트카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빙도 하고 카운터도 함께 봤는데 계산할 때 보니까 그는 나와 생년이 같고 생일만 하루 빨랐다. 일본에서 미치코가 태어나고 다음 날 한국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그 사실을 말했더니 아줌마는 웃으며 “인연이네요”라고 한다.

두 딸은 낯도 가리고 살짝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유치원생 막내 아들은 외국인인 나를 잘 따랐다. 나는 가끔 꼬마가 귀엽다며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주었다. 그걸 알고 아줌마는 답례로 양말을 한 켤레 내게 선물했다. 그렇게 미치코 가족과 나는 친해졌다.

하루는 음식을 내는 내게 잠시 앞에 앉으라고 하더니 아줌마는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 머리를 숙여 절한다. “옛날 우리 일본이 김씨의 민족에게 가한 잘못에 대해 깊이 사죄합니다.” 졸지에 민족을 대표하게 된 나는 순두부 아줌마의 사죄를 받아들여야 할지 어떨지 몰라 한참 쩔쩔맸다.
또 하루는 점퍼를 내게 선물한다. 색상이나 디자인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점퍼를 입어본다. 다른 손님들도 잘 어울린다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귀국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미치코는 내게 일본에 다시 안 오는 거냐고 묻는다. 1년 후에 다시 온다고 나는 대답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직장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바빴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밤 주방장 아저씨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팀 회식이라 주변이 시끄러웠다. 나는 전화를 빨리 끊고 싶은 마음에 “별일 없죠?”라고 묻는다. 주방장 아저씨는 별일은 없다며 대략 이렇게 말한다. “김 아저씨 한국에 간 이후로 순두부 아줌마도 발을 끊었다. 그랬는데 오늘 와서 평소처럼 순두부찌개 두 그릇 먹고 ‘우롱와리’도 두 잔이나 마시고는 나를 찾아서 물어보더라. 김씨가 어디 있느냐고. 그래서 한국에서 잘 산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우롱와리는 김씨가 탄 게 맛있었다고 하더라. 우롱와리를 세 잔이나 더 마시고 꽤 취해서 방금 전에 나갔다. 가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김씨는 거짓말쟁이라고.” 주방장 아저씨의 말이 계속 이어졌지만 회식 자리가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웃음과 눈물이 꼬물꼬물 묻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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