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딜런 노래처럼 … 중국은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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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미국 팝가수 밥 딜런(Bob Dylan·70)의 6일 베이징 공연은 1960년대 문화 아이콘이던 미국 저항가수가 처음으로 ‘붉은 중국’의 무대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적인 사건이다. <중앙일보 4월 8일자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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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딜런은 이번 공연에서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g in the wind)’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같은 저항과 반전 성향의 대표곡들을 부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팬에게 상당한 실망을 안겨 줬다.


 그 배경에는 중국 문화 당국이 있다. 중국 문화부는 최근 홈페이지에 “공연기획사의 신청을 받아 딜런의 공연을 허가한다”며 “허가받은 범위에서 공연을 진행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 ‘허가받은 범위’란 게 저항 성향의 곡을 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딜런의 공연은 지난해 4월 추진됐으나 검열 논란이 일면서 한 차례 무산됐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성사는 됐지만 결국 전 세계에서 밥 딜런 하면 떠오르는 히트곡들이 빠진 어정쩡한 공연이 돼 버린 것이다. 중국 문화계에서 활동해 온 한 교민은 “당국이 공연의 선곡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연 방식에도 잔소리를 하는 것이 중국의 해묵은 관행”이라고 전했다. 결국 당국의 입김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흘러나오는 딜런의 대표곡들을 베이징 공연장을 찾은 중국 팬들만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개혁·개방 30여 년이 흘렀다지만 중국에선 여전히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우리 속에 가두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애미미·53)가 3일 구금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중국이 자랑해 온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일명 새둥지)’의 공동 설계자다. 저명한 시인 아이칭(艾靑)의 아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의 인권 탄압에 반발해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해 왔다. 중국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딜런의 공연도 상처를 입었다.

 이번 공연을 보도한 중국중앙방송(CC-TV) 사회자는 “저항가수라는 편견 때문에 딜런의 공연을 중국에서 너무 오랫동안 볼 수 없었지만 이제 공연이 성사돼 중국과 세계는 느낌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와의 거리를 정말 크게 좁혔을까.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북돋우지 않고 진정한 혁신을 이뤄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딜런이 베이징에서 부르지 못한 노래인 ‘블로잉 인 더 윈드’의 가사로 대신한다. “친구여, 정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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