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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FTA 번역도 부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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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무등록 출판사와 덤핑 서점이 포갬포갬 몰려 있는 종로 5가 뒷골목 한구석의 오죽잖은 한옥, 그 통일 여인숙의 침침한 방구석이 일테면 직장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서넛에 붉은 볼펜 몇 자루, 찌그러진 주전자와 다방에서 집어 온 찻종 두어 개가 사무 집기의 전부였다. …그곳으로 출근한 희찬은 이미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소설책을 펼쳐놓고, 게다 띄엄띄엄 건성으로 읽어가며 마음 내키는 대로 변조하는 것이 일이었다. …번역자가 전혀 다른 것처럼 위조하는 작업이었다.’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의 마지막 편 ‘월곡후야(月谷後夜)’(1977년)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문구는 희찬의 직업에 대해 ‘억지로 이름하면 세계명작개칠사(改漆師)’라고 코믹하게 묘사했다. 세계문학전집이 붐을 이루던 1960~70년대 우리나라 출판·번역시장의 어수선한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1920년대에 세계문학전집 붐이 일었다. 27년에 나온 57권짜리 신초샤(新潮社) 세계문학전집은 구매 예약자만 40만 명이었다(조영일 ‘세계문학전집의 구조’). 전문가들은 60년대 한국의 세계문학전집 붐이 일본어를 모르는 세대가 청년기를 맞이한 시기와 맞물린 점에 주목한다. 아쉽게도 번역 역량이 한참 모자랐기에, 많은 전집이 일어판에 의지한 중역(重譯)이었다. 군소 출판사들은 남의 번역을 멋대로 짜깁기했다. 이문구가 묘사한 곳도 그런 유령 출판사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번역 실력은 60년대와 비교가 안 된다. 98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출간 개시(지금까지 267권이 나왔다)를 계기로 출판사들이 다시 내놓기 시작한 세계문학전집들은 대개 수준급 번역을 자랑한다. 101권까지 나온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경우 상업성이 없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해당 언어 전공자가 초역·직역·완역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소설가 신경숙씨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Please Look After Mom』)이 5일 미국에서 출간됐다. 뉴욕 타임스가 두 차례나 리뷰를 할 정도로 전례 없는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초판이 10만 부인데 서점들의 요청으로 벌써 재판 인쇄에 들어갔다는 건 일종의 ‘사건’이다. 외국 작품 번역과 더불어 국내작의 외국어역도 한 차례 도약이 이뤄졌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미국인들을 울린 영문판 『엄마를 부탁해』의 번역자가 LA에 사는 30세의 변호사 김지영씨라는 데 적잖이 놀랐다. 유명 번역가 유영난씨가 모친이라니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인가. e-메일 인터뷰를 해 보니, 보스턴에서 태어난 김씨는 부친의 직장 때문에 3~4년에 한 번씩 미국·한국·캐나다를 오가며 자랐다고 한다. 서울 윤중초교·여의도여고도 거쳤고, ‘리틀 아이비(Little Ivy)’로 불리는 명문 웨슬리언대에서 역사·불문학을 전공했다. 그녀가 뛰어난 이중언어 구사자(bilingual)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부모의 교육 덕분인 듯하다. “성장기에 영어와 한국어 책을 동시에 많이 읽었다. 외국에 살 때는 부모님이 한국 친구를 많이 만나게 해주셨다. 한국의 할아버지·할머니에게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한국어) 편지를 썼다. 반면 한국에 살 때는 영어를 쓸 기회를 많이 마련해주셨고, 영어 책을 읽게 해주셨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번역하면서 가장 유의한 점은 “처음부터 영어로 쓴 것처럼 읽히도록 하고,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영어권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문학작품 번역 역량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나아졌다. 이 와중에 산통을 확 깨트린 것은, 정확에 정확을 기해야 마땅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오역(誤譯) 파문이다. 고교생에게 맡겨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참에 김지영씨를 모셔와 “FTA 협정문 번역도 부탁해요”라고 사정이라도 해야 하나.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