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지리산에서 온 편지 벙어리 달빛'

중앙일보

입력

'스님이 남기고 간 초라한 가재도구와 노트북 하나'

삭막하기만 한 서울생활을 접고 홀연히 지리산으로 들어간 이원규 시인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이다. 아니 한가지 또 있다.

'자연'

산에서 맞는 여름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 때문에 더욱 맛이 난다는 그. 지리산 바람 냄새가 나는 그는 세상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그리울수록 더욱 깊고 먼 곳에서 그리움을 키워나가는 것이 그의 삶의 자세다.

"혼자 외딴집에 살다보면 하루종일 한마디의 말로 하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 혼자 중얼거려 보아도 말이 잘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충만해집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지리산 골짜기를 찾아갑니다.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그저 산속에서 침묵하는 게 훨씬 편할 때가 많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중에서)

그가 역사의 질곡과 상처를 많이 겪은 지리산으로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잣대로 말할 수 없는 대자연 속에서 좀 다른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손수 섬진강에 투망을 던져 잡아온 은어로 찾아온 손님에게 요리를 해주고 가까운 절의 스님과 음담패설을 나눌 줄 아는 사람. 온갖 나무와 꽃들과 이야기하며 사는 사람. 시인은 도시인들이 쉽게 지나쳐 버리거나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대자연의 숨결 속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찾아내고 있다

음식위에 감잎 두장을 얹어 보낸 이웃집 할머니의 마음이 아름답다. 보내온 음식보다 그 감잎 두장을 더 고맙고 소중히 여기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이 부럽다.

▶작가 소개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들꽃'을 발표하고 1989년 '실천문학'에 '빨치산 아내의 노래'외 1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제 16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았다.
시집으로 '빨치산의 편지'.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돌아보면 그가 있다'등이 있다.
현재 서울에서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독거 생활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Cyber 중앙 박 영 홍 기자 <am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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