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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정부 입김 큰 정유·통신 주력 … SK는 아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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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다. 하지만 SK에너지는 일단 거꾸로 갔다. 오는 7일부터 석 달간 휘발유·경유 값을 L당 100원씩 할인해 주기로 했다.

 L당 100원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휘발유·경유 같은 석유 사업에서 1000원어치를 팔아 20~30원을 남기는 데 그쳤다. L당 100원을 깎아주겠다는 것은 밑지고 팔겠다는 소리다. 이윤을 추구해야 할 기업이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SK에너지는 보도자료에서 “유가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 국민 경제에 활력을 주고, 물가 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는 정부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손해를 감수한 인하 결정은 SK그룹이 영위하는 사업상의 본질적인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SK그룹의 주력 사업은 정유와 통신이다. 둘 다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업종이다. 기름값은 시시각각 가격이 공개되고 있고, 대표적 규제산업인 통신은 진입부터 주파수 할당까지 정부가 결정한다. 기름값과 통신요금은 정부 물가관리의 핵심 대상이다.

 SK는 올 들어 정부의 기름값 인하 압박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사들의 담합 의혹을 조사했으며, 최근 그 결과를 SK에너지 등 정유사들에 통보했다. 정유사들이 서로 주유소 확보 경쟁을 자제하기로 하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가 정유사들에 거액의 과징금을 물릴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서는 나돌고 있다.

 통신 역시 정부로부터 요금 인하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에 대해서도 공정위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 사업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선 정부로부터 좋은 주파수를 받아내야 한다.

 이래저래 SK는 정부 눈치를 강하게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손해를 무릅쓰면서까지 기름값을 인하키로 한 것은 그룹의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기름값을 내림으로써 당장 수천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정부 물가 안정 시책에 협조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각도로 조여오고 있는 정부 압박 수위를 낮추는 게 그중 하나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 효과도 있다. 앞에선 밑지지만 뒤로는 남는 장사일 수 있다는 업계의 분석도 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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