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33인의 신화창조’ 4세대 이동통신 기술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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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한국의 인터넷 접속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발표했다. 초당 14메가바이트(MB)로 세계 평균(1.9MB)의 7배 수준이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 증가율은 외려 전년보다 3.2% 감소했다. 사람들이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웹에 접속하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술 발전과 시설 확충이 트래픽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면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전송 지연도 없어질 것이다. 단말기의 배터리 소비도 줄어든다. 그간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기술 개발에 비상한 노력을 쏟아 부어온 결과다. 1세대 아날로그 방식에서 시작해 2세대 디지털 방식 전환까지 관련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동통신 기술은 3.5세대 기술로, 10년 전 ‘꿈의 이동통신’이라 불리던 3세대 IMT-2000 시스템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IMT-2000 시스템만 해도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보내기가 전부이던 2세대 기술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룬 것이다. 2Mbps(초당 A4 서류 160장을 보낼 수 있는 속도)의 고속 데이터 전송, 영상 통화, 글로벌 로밍이 모두 가능해졌다. 그러나 막상 3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이 실현되자 고속·대용량 데이터 전송에 대한 사용자 요구는 더욱 커져갔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시 3.5세대 시스템이 나왔고, 이제는 4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에 대한 표준화가 활발히 진행 중인 것이다.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동안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33명 연구원은 그야말로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무선 전파 간섭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선 인위적으로 유사 상황을 만들기 위해 사람이 직접 안테나를 잡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안테나를 잡느냐에 따라 전파 간섭 발생 수치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곤 했다. 결국 더 문제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서로가 안테나 잡는 노하우(?)를 보여주는 등 시험 도구 역할을 자처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전자파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나면 심신이 흐느적거리고 피곤이 몰려왔다.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해 겨울에는 기록적인 한파로 인해 또 말 못할 고생을 겪어야 했다. 시험용 차량에 무리가 온 것이다. 시연을 이틀 앞둔 날 차량에 이상이 생겨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차를 견인해 밤새 수리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연날 오전 일찍부터 시험 차량을 준비했으나 시간이 계속 뒤로 미뤄지면서 5시간 이상 시동을 켠 채 대기해야 했다. 결국 차량의 전원 장치가 고장 나면서 시험용 단말기에 전원 공급이 되지 않는 급박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다행히 전원 공급 장치가 이중으로 돼 있어 위기를 넘겼지만 관계자들로서는 십년감수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것은 더 이상 ‘차세대 이동통신’이 아니다. 4세대 이동통신도 시간이 지나면 옛것이 되고 말 것이다. 정보통신(IT) 강국으로서 미래를 계속 선도하려면 5세대, 6세대 기술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 1세대 아날로그 시절부터 그랬듯 멀리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술 기획과 개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절실한 이유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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