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촛불로는 원전 문제 못 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부문 선임기자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이후 한반도 전역에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고 한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검출된 방사능의 양이 워낙 적어 인체에는 해가 없다고 해도 믿질 않는 눈치다. 시민들은 일본산 식품이라면 아예 사먹을 생각이 없다.

 전문가들은 후쿠시마의 방사능 유출이 한반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누출된 방사능은 지구 자전에 의해 일년 내내 부는 편서풍을 타고 태평양 쪽으로 날아가 대기 중에 흩어지거나 바다에 떨어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궤변이 횡행한다. 지구가 거꾸로 돌면 모를까,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국내 환경단체와 일부 언론이 보인 첫 반응은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사고 내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대뜸 우리나라 원전부터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에서와 같은 지진이 우리나라에 일어난다면, 일본과 같은 정도의 쓰나미가 우리 동해안에 밀어닥치면, 그리고 일본 도쿄전력처럼 안전 대책을 소홀히 하면 우리나라의 원전도 위험하다는 경고가 빗발쳤다. 가정에 가정을 더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시나리오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한껏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국내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문가의 90%가 우리나라 원전이 안전하다고 답한 반면 일반인은 43%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더욱이 일반인의 94.1%가 ‘일본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로부터 우리나라가 안전하다’는 정부와 원자력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답한 것은 충격적이다. 흡사 2008년 쇠고기 촛불시위 때 정부가 아무리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해도 못 믿겠다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야당은 국민들의 불안감에서 정치적 호기를 발견했다. 손학규 민주당대표는 즉각 ‘원전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고, 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은 수명이 연장된 고리 1호기의 가동 중단과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 철회, 신규 원전 건설계획의 백지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가 3년 전에는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을 포기하고, 용산참사와 4대 강 사업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번(원전 안전 문제)에도 그럴까 불안하다”고 주장한다. 원전 안전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음험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원전 문제는 정치적 논란으로 풀어질 일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원전 정책은 에너지 정책의 일환이고, 결국 어떤 에너지를 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즉 앞으로 전기를 얼마나 쓸 것이며, 그 전기를 생산하는 데 어떤 에너지원을 얼마나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여기서 선택의 기준은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비용,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안전성이다. 환경 영향과 안전성은 과학적으로 평가할 문제이고, 공급의 안정성과 비용은 경제적으로 따져볼 일이다. 어느 한 가지 기준만으로 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민의 생명이 위험한데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 위험도 정도의 문제다. 위험하기로 말하면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개발된 북한의 핵무기가 수천수만 배 더 위험하다.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아예 원전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원전을 완전히 없애려면 당장 국민 생활의 일부를 포기하고, 국가경제에 타격을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쓰면 된다지만 개발에 시간과 돈이 드는 것은 물론 원전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석유나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로 되돌아가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뿐더러 탄소배출을 늘리고 지구 온난화를 촉진하는 부작용이 크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세계 각국은 나름의 원전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원전 사고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그에 따른 안전대책을 보완하자면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됐다. 그럼에도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과 러시아는 여전히 원전을 폐기하거나 가동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 에너지 블랙홀로 떠오른 중국은 현재 건설 중인 원전에다 추가로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접지 않고 있다. 원전 수출국 프랑스는 물론 영국과 스웨덴·핀란드 등 독일을 제외한 유럽의 원전 강국들도 원전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 없다. 미국 역시 건설 중인 원전 2기의 공사를 중단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원전의 안전성을 높일 방법을 과학적으로 찾아보고, 우리 나름의 현실적인 원전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작정 원전은 안 된다는 환경 원리주의에 빠지거나 원전 문제를 정치 쟁점화해서는 결코 원전 문제를 풀 수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