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영장 기각 후 살인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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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난 피의자들이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을 믿지 못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29일 경기도 수원서부경찰서는 자신이 묵던 고시원의 여주인과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찌른 문모(51)씨를 붙잡아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문씨는 28일 오전 3시 고시원 여주인 최모(66)씨가 “TV 소리를 줄이라”고 하자 방에 있던 흉기로 최씨를 찌르고 달아났다. 최씨는 크게 다쳤지만 생명은 건졌다. 경찰은 짐을 챙기려고 고시원에 들른 문씨를 붙잡았다.

 문제는 문씨가 지난달 19일 최씨와 말다툼을 벌인 뒤 불을 질렀다가 경찰에 붙잡혔으나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해 구속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경찰은 전과 3범인 문씨가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수원지방법원은 19일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문씨가 동종 전과가 없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 중이어서 직업과 거주지가 일정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문씨의 추가 범죄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17일 수원에서 부동산중개업자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피의자도 범행 열흘 전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피해액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영장이 기각됐다. 전과 9범인 피의자는 동종 전과가 있는 데다 출소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누범 기간이었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강력범죄가 잇따른 것에 대해 반발했다. 수원지검 박경호 차장검사는 29일 “영장 발부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기각 역시 신중해야 한다”며 “최근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풀려난 뒤 살인사건을 저지를 피의자에 대해 법원은 사안의 경중, 구속의 상당성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그럼 도대체 사안의 경중은 무엇이고 구속의 상당성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박 차장검사는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는 담당 형사부터 부장검사에 이르기까지 최소 4단계를 거쳐 판단하는데 법원은 뚜렷한 기준도 없이 기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장 발부와 관련한 검찰과 법원의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선 상급심에 판단을 맡길 수 있는 영장 항고제와 배심원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원지법 이현복 공보판사는 “불구속재판 원칙의 강화로 인한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인 법 원칙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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