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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네버 렛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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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복제인간의 사랑과 기구한 운명을 다룬 SF로맨스 영화 ‘네버 렛미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 ‘네버 렛미고(Never let me go)’의 뛰어남을 얘기하다 보면 결국 원작에 대한 칭송이 된다. 일본계 영국인이자 앤서니 홉킨스·엠마 톰슨 주연 ‘남아있는 나날’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가즈오 이시구로. 그가 2005년에 발표한 『나를 보내지마』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소설’이자 ‘100대 영문소설’로 선정됐던 작품이다.

 SF와 멜로를 혼합해 ‘복제인간의 성장소설’을 시도한 점도 놀랍지만, SF의 배경을 1970년대 영국 기숙학교로 택한 역발상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복제인간 소년소녀들의 가슴 아픈 운명, 그 위에 포개지는 ‘설령 인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운명을 마음대로 흔든다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철학적 질문 등이 잔잔해 보이는 이 영화를 멜로드라마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기숙학교 헤일섬의 세 학생 캐시(캐리 멀리건)와 토미(앤드류 가필드), 루스(키라 나이틀리)가 주인공이다. 헤일섬의 정체는 아리송하다. 에밀리 교장(샬롯 램플링)은 아이들에게 “너희는 특별한 존재”라고 강조할 뿐 이들이 왜, 어떻게 이 곳에서 살게 됐는지는 아주 천천히 밝혀진다. 대단한 미스터리 기법을 쓰는 건 아니지만,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듯한 방법으로 이들이 실은 복제인간이라는 사연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 사연을 떠받치는 건 이들의 삼각관계. 캐시와 토미는 서로에게 감정을 느끼지만, 루스가 먼저 토미에게 고백하면서 연인이 된다.

 나이든 복제인간들이 부딪치는 현실은 ‘장기이식’이다. 서너 차례에 걸쳐 장기를 기증하고 생명을 잃는다. 영화 처음, “1978년 인간 수명은 100세를 돌파하고, 지구상에서 희귀병은 사라진다”라는 자막이 이쯤 되면 다시 머리 속에 떠오른다. 현실을 부정하려는 인간의 부질없는 몸짓은 언제나 슬프다. 토미는 “복제인간일지라도 진실한 사랑을 입증할 수 있다면 기증을 연기할 수 있다”는 소문을 믿는다. 갤러리 마담(내털리 리처드)의 집에서 에밀리 교장, 토미와 캐시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면은 수명을 인위적으로 제한당하는 복제인간들의 비극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원작의 탁월함에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지만, 결국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건 영상의 힘이다. 폐선(廢船)이 서있는 바닷가 장면은 이 영화가 선사한 간직하고픈 순간이다. 삶의 유한성 때문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청춘을 연기한 세 배우도 마찬가지다. 연기경력에선 루스 역의 키라 나이틀리(‘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러브 액추얼리’‘오만과 편견’)가 앞서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캐시 역의 캐리 멀리건(‘에듀케이션’)이 한 수 이긴 느낌이다. 마크 로마넥 감독. 4월 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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