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 노트] 시청자 놀린 MBC ‘나는 가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민우 기자

“이렇게 시청자를 우롱해도 되는가.” “서바이벌이라는 말을 빼는 게 낫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기획 김영희)가 방영 초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즉흥적인 진행과 감성적인 동정론 등이 더해지며 ‘누군가 한 명은 떨어져야 한다’라는 프로그램의 제 1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김건모·이소라·박정현·윤도현·백지영·김범수·정엽 등 당대 최고 인기 가수 7명이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이를 일반인 500명의 청중 심사단이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장 점수가 낮은 한 명은 떨어뜨리는, 서바이벌 형식이라 6일 첫 방송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아마추어나 무명의 신인이 나오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해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경쟁한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았다.

‘가수의 서열화’라는 지적에도 대중의 뜨거운 관심 덕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종결자’라는 평마저 들었다.

 20일 방송은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오는 날이었다. 500명 심사단 심사 결과 꼴찌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 김건모였다. 규정대로 탈락해야 했다.

하지만 이소라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김건모가 탈락한 게 너무 슬프다”라며 무대를 뛰쳐나가는 등 출연진 모두 웅성웅성했다. 반발이 커지자 제작진은 긴급회의를 열었고, “김건모가 마지막에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 퍼포먼스가 청중 평가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 같다. 재도전의 기회를 주고 싶다”며 김건모에게 최종 결정을 떠넘겼다. 이어 김건모가 재도전 의사를 표명하면서 ‘매주 꼴찌를 탈락시키고 새로운 한 명을 받아들인다’는 프로그램의 룰은 실종되고 말았다.

 트위터·시청자 게시판에는 쓴소리가 넘쳐났다. “다른 후배 가수가 7위를 했다 해도 이럴 건가요. 자기 자신의 실력은 탓하지 않고 환경만 탓하는 변명, 정말 듣기 거슬리고 짜증났습니다”(babubada03), “가수 자신들의 평가만 중요한가요? 평가단 의견은 정말 우습게 여기나요”(peas42) 등의 성토가 쏟아졌다.

 최근 오디션, 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공정한 경쟁을 통한 승리의 감동 때문이다. 승리의 이면에는 실패라는 아픔 역시 도사리고 있다.

그 선택, 혹은 탈락 과정이 정당하지 않다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가 뿌리부터 부정된다.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이 같은 대원칙을 무시했다. 그렇다면 일반인 심사단이 굳이 필요했을까. 지금 인터넷엔 “‘나는 가수다’가 아니라 ‘나는 PD다’로 프로그램명을 바꾸라”란 비아냥이 떠다니고 있다. 이러고도 쇼는 계속돼야 할까.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