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미국의 바닷물 투입 제안 거부 … 일본, 타이밍 놓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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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은 여전히 통제 불능 상태다. 이러다 보니 일본 안팎에서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리더십 부재’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가 처음 폭발한 것은 지진 발생 25시간이 지난 12일 오후였다. AFP통신은 에리크 베송 프랑스 산업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폭발 직후 프랑스가 일본에 붕산 제공 의사를 밝혔지만 일본 정부의 답변이 없어 보류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나서야 한국과 프랑스 정부에 붕산 지원을 요청했다. 중성자를 흡수해 핵 분열을 억제하는 붕산은 일러야 19일에나 일본에 도착할 예정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소중한 ‘초기 일주일’을 허비한 셈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기술 지원 제안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요미우리 신문은 18일 집권 민주당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1호기 폭발 뒤) 미국의 기술 지원 제안을 거부해 위기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도쿄전력이 미국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며 책임을 도쿄전력 측에 떠넘겼다. ‘뜨거운 감자는 타 부서로’라는 전통적인 일본 관료제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노출됐다.

 도쿄전력의 보고 지연과 정부의 ‘보수적 상황 판단’도 상황 악화를 거들었다. 간 총리는 1호기 폭발 상황을 총리 관저에서 TV를 통해 봤지만 폭발 이후 한 시간이 지나서도 상황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전통’도 도마에 올랐다. 간 총리는 원전을 복구할 수 있다는 도쿄전력의 판단을 믿고 바닷물 투입을 늦췄다. 일본 정부는 14일 3호기가 폭발한 다음에야 바닷물 투입을 결정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18일 “사태 초기에 바닷물을 투입해야 한다는 미국의 제안을 간 총리 정부가 수용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과 정부 내 일부 인사의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17일 오후 7시 도쿄 시부야(澁谷) 거리에선 지진 이후 처음으로 학생과 노동자 36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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