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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TV·음료업체 서로 경쟁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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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조경식
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장

“예전에는 신문이나 TV, 라디오 같은 주요 미디어만 신경쓰면 됐는데,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니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특히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미디어가 부상하면서 소비자들이 즉각적으로 콘텐트를 생산하고, 순식간에 퍼뜨리기 때문에 기업들이 손 쓸 새도 없이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하루하루 대응하기만도 벅찹니다.”

 얼마 전 한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가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요즘 기업들, 특히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비슷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이런 고민은 스마트 시대의 변화를 미디어 채널의 증가, 소비자 권력의 증가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마케팅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경쟁사와의 시장 점유율을 두고 경쟁하는 ‘마켓셰어(Market Share)’에서 소비자의 인식을 점유하기 위한 ‘마인드셰어(Mind Share)’를 거쳐 이제는 소비자의 일상을 얼마나 점유하는가가 관건인 ‘라이프셰어(Life Share)’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라이프셰어란 브랜드가 소비자의 일상을 얼마나 공유하는지, 특히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할 핵심 일상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마케팅 지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마트화는 기업의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기업이나 브랜드가 소비자 개개인의 일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현격히 증가시키는 하나의 기회로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라이프셰어의 일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경쟁 상대가 비단 같은 업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휴식’이라는 일상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기도 하고, TV를 보기도 하며,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결국 ‘휴식’이라는 일상 단위에서 휴대전화와 TV·음료가 서로 소비자의 일상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프셰어의 시대에는 소비자의 일상 점유를 두고 서로 다른 업종 간 경쟁이 새롭게 부각된다.

 결국 라이프셰어 시대에는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의 전통적인 TPO(시간·공간·상황)를 넘어 소비자의 일상에서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새로운 마케팅 목표가 돼야 한다. 또 라이프셰어를 더 높이기 위해 동일 업종 내뿐 아니라 타 업종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한 카레 브랜드가 론칭하면서 펼쳤던 활동들이 인상적이다. 기존의 식품 브랜드들이 론칭하면서 전통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던 TV 광고나 매장에서 벗어나서 소비자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브랜드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극장 광고를 통해 마치 한 편의 영화 예고편처럼 브랜드를 알렸는가 하면, 가로수길에 직접 팝업숍을 열어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시식을 하듯 새로운 방법으로 신규 브랜드를 알렸다. 소비자들의 일상생활 속에 침투해 자연스레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화는 알게 하고, 좋아하게 하고, 구매하게 하는 일련의 순차적인 마케팅 프로세스를 뛰어넘어 소비자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스마트 시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소비자 일상을 더 많이, 더 깊게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조경식 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