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오세훈의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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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현옥 교수가 가장 전문가지.”

 2005년 10월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선정됐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와 더불어 현대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극작가였다. 기사를 쓰기 위해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둘러 수소문했다. 해럴드 핀터로 박사 논문을 받았고, 당시 이미 4년째 ‘핀터 페스티벌’을 해오고 있던 세종대 송현옥(50) 교수를 많은 이들이 추천했다.

 서둘러 송 교수에게 전화했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핀터의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그가 오세훈씨의 아내라는 건 몇 개월 지나서야 알았다. 1년 뒤 오세훈씨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송 교수도 시장의 아내가 됐다.

 오 시장이 선거 운동할 때 송 교수는 연극 준비하느라 한번도 유세장에 안 갔다는 말이 그때 있었다. 난 속으로 ‘수석 합격자가 교과서만으로 공부했다는 식의, 상투적인 발언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 후 공연장을 오고 가다 몇 차례 송 교수를 보게 됐다. 직접 만나 보니 진짜로 유세장엔 안 갔을 거 같았다. 정치엔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었고, 예술 얘기로 침을 튀겼다. 좋게 보면 소탈하고 담백했지만, 달리 보면 푼수끼가 많았다. 본인 스스로도 툭하면 “제가 워낙 철이 없잖아요”라고 했다.

 지난해 6월, 오 시장이 접전 끝에 재임에 성공한 뒤 인사차 송 교수에게 “축하 드립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사흘쯤 지나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역시 권력이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요즘 정신 없으시죠?”라고 물었더니 그가 “어떻게 아셨어요. 저 지금 대구 내려가는 중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두 번째 선거 때도 세종대 학생들과 밤샘을 하며 조그마한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제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대학생 경쟁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어찌 보면 아마추어 대학생끼리 경쟁해 받은, 그저 그런 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지인은 “남편이 재선했을 때보다 훨씬 기뻐하더라”라고 전했다.

 송 교수가 각색·연출한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서울 대학로 정미소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몇 차례 그의 연극을 봐 왔지만, 이번에도 딱히 재미는 없었다. 다만 무용 요소를 적절히 삽입한 건 신선했다. 그는 “대사를 넘어선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을 확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2주일가량 하는 연극의 총 제작비는 1500만원 안팎. 몽땅 송 교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그가 극단을 만든 건 2007년. 이번 연극은 여덟 번째 정기 공연이다. 지금껏 그 흔하다는 정부 지원금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원금 주었다가 “시장 아내한테 돈 주었대”라는 구설에 오를 게 뻔한 데 어떤 심사위원이 총대를 멜까. “이거 역차별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송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

 권력층의 아내, 아들, 형제가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해온 걸 우린 숱하게 봐왔다. 그들의 가족이라면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권력자의 아내가 꼭 김장 김치를 담그는 장면을 연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껏 봐온 교수 송현옥은 천재 연출가는 아니지만, 연극을 무척 좋아하는 건 분명했다. 그의 남편이 더 높은 위치에 가더라도, 송 교수가 계속 연극을 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정파적이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송 교수는 6월에 러시아로 공연을 간다. 그는 “국내에선 알아주지 않지만, 제가 이래봬도 해외에선 먹히는 글로벌한 연출가에요”라며 까르르 웃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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