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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굶주림에 추위에 피난소 27명 사망 … ‘2차 재앙’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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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동일본 대지진 이재민들에게 제공될 구호물품을 실은 일본 자위대 소속 수륙양용 공기부양정이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시에 17일 상륙했다. [AP=연합뉴스]


17일 아침,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의 수은주는 영하 3도를 가리켰다. 전날 내린 눈이 지진의 폐허를 하얗게 뒤덮었다. 이곳 전수대학 피난소에서 일주일째 생활 중인 70세의 스에나카 노리코 할머니는 종이상자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끼니는 바나나와 초콜릿으로 때워야 했다. 그는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 것 같다. 따뜻한 차를 마셨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25세의 주부 와타나베 나나는 돌이 갓 지난 아들을 꼭 껴안고 있었다. 그는 “아기가 후들후들 떠는 모습을 보기가 정말 고통스럽다”며 모포를 지급해달라고 애원했다.

이시노마키 시민 16만 명 중 4만 명이 피난소 신세를 지고 있다. 이들에겐 오니기리(주먹밥)와 쌀·즉석라면·빵·음료수 등 먹고 마실 것과 모포·가설화장실·휘발유·난방연료 등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시내 공원엔 물과 식량, 의약품들이 쌓여 있었다. 미야기현의 위기대책 담당자는 “모아 놓은 구호품들을 주민들에게 수송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수송 인력이 부족한 데다 지진으로 도로망이 마비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와테(岩手)현의 가마이시(釜石)항엔 나고야(名古屋)에서 도착한 1800명분의 비상식량과 물 1800L 등의 구호품이 쌓여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물자 부족에 따른 굶주림과 난방 부족은 급기야 피난소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사태를 빚고 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福島)현 후타바(雙葉) 병원에선 피난민 128명 중 2명이 14일 밤 다른 피난소로 이동하다 숨졌다. 그 뒤 16일까지 12명이 차례로 사망한 것을 비롯, 17일까지 후쿠시마 현내 피난소에서 총 18명이 숨졌다고 한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의 제1중학교 피난소에서도 16일 80대 여성이 사망했고 미야기현 다가조(多賀城)시의 센엔소고(仙鹽總合) 병원에선 17일 고령 입원환자 8명이 한꺼번에 숨졌다.

 물자 부족 사태는 피난소를 넘어 피해지역 주민 전체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리쿠젠타카타의 주유소엔 연료를 넣으려는 차량이 10여 대씩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제한급유 정책 때문에 차량마다 한번에 10L밖에 채울 수 없었다. 경찰·소방서원·지원물자 수송차량만 기름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단수 조치로 식수뿐 아니라 생활용수 부족도 심각한 상태다. 후쿠시마현 내 체육관에서 생활 중인 한 여성은 “샤워는 물론 양치질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매일 목욕하는 습관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씻지 못하는 고통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후생노동성의 집계 결과 이날 현재 도호쿠(東北)·간토(關東)의 12개 현 160만 가구가 단수 상태다. 이와테현 야마다초(山田町) 주민들은 부족한 생활용수를 보충하기 위해 쌓인 눈을 긁어 모으기도 했다.

 지진 뒤 불어 닥친 한파 때문에 전력난도 더욱 심각해졌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도쿄전력 관내의 이날 전력공급 가능치는 3350만㎾이지만, 오전 중 최고 사용량이 3292만㎾에 달했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일주일째 지속되자 침착하던 일본인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일본은 열차가 1분만 늦게 도착해도 기관사가 사과를 할 정도로 정교함이 몸에 밴 나라다. 하지만 지진 뒤엔 열차가 끊길 것을 걱정해 통근자들이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도쿄의 적지 않은 상점에선 시민들의 사재기로 쌀과 우유 등 생필품이 바닥난 상태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져갔다. 도쿄 도심 시오도메(汐留)의 후지쓰 매장에 근무하는 도키와 신야는 “정말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며 불안해 했다.

 흉흉해지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자위대와 미 해병대가 손을 잡았다. 이들은 16일 밤부터 일본 서부 니가타(新潟)에서 생필품을 실어 지진 피해 지역으로 실어나르는 작전을 개시했다. 작전명은 ‘도모다치(友達·친구)’다.

이시노마키·리쿠젠타카타·요네자와 ·도쿄=남윤호·박소영·김현기·이승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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