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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우즈가 사랑하는 퍼터 만든 이 사람 ‘스코티 캐머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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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퍼터의 반 고흐’로 불리는 스코티 캐머런이 손수 제작한 퍼터를 들고 있다. 캐머런은 퍼터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만든 수제 퍼터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거 우즈 같은 톱 프로들도 그의 고객이다.

‘퍼터의 반 고흐’로 불리는 스코티 캐머런이 손수 제작한 퍼터를 들고 있다. 캐머런은 퍼터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만든 수제 퍼터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거 우즈 같은 톱 프로들도 그의 고객이다.

3월11일 오전 11시. 일본 시즈오카현 이와타시 사메지마에 있는 하마마츠 시사이드 골프장을 찾았다.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스코티 캐머런 퍼터 박물관’이 있다. 그의 오랜 팬이었던 일본의 후쿠다 유카다 사장이 자비 20여억원을 들여 2006년 자신의 골프장에 박물관을 오픈한 것이다. 이곳에서 퍼터의 명인 스코티 캐머런을 만났다. 캐머런은 이날 박물관 내에 퍼팅 스튜디오를 공식 오픈했다.

퍼터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그였기에 다른 예술가들처럼 깐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선입견은 보기 좋게 깨졌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자상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러나 퍼터에 대한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할 때는 열정과 강한 카리스마가 물씬 풍겼다. 무엇보다도 왜 퍼터를 디자인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보험 조사원이었던 아버지(돈 캐머런)는 핸디캡이 2일 정도로 수준급 골퍼였다. 클래식 클럽 수집가이던 아버지는 클럽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주차장 한쪽에 작업장을 만들고 드라이버를 직접 제작했다. 8~9세 때부터 자연스럽게 클럽 디자인에 흥미를 느꼈다. 특히 퍼터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퍼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퍼팅에 유독 약한 ‘새가슴’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2~3번 라운드를 하는 그의 공식 핸디캡은 2. 대학교에서 골프 선수로도 활동했던 그는 결혼 뒤에도 한동안 프로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장인 어른 친구에게 1500달러를 빌려 서부지역 미니 투어에도 참가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항상 퍼팅이 문제였다.

캐머런이 박물관 입구에 걸려있는 자신의 사진 앞에서 최근 새로 제작한 수제 퍼터를 들고 웃고 있다. 이 퍼터의 가격은 1만6000달러(1800만원)다.



“어려서부터 거리나 아이언 샷은 좋았다. 하지만 담력이 부족했다. 결국 프로의 꿈을 접었고 퍼팅으로 고생하는 골퍼들을 위해 멋진 퍼터를 만들고 싶었다.”

캐머런 퍼터 커버가 전시된 장식장.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골프 용품 숍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1986년 레이쿡사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퍼터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가 만든 최초의 퍼터는 레이쿡사의 청둥오리가 새겨진 블루구스 퍼터였다. 100% 수작업으로 만든 퍼터는 골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4년 만에 회사 매출 규모를 10배 이상 늘렸다. 하지만 회사 측과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91년 독립했다.

“회사 측은 대량생산을 통해 18달러 정도의 저렴한 퍼터를 원했고 나는 비싸더라도 최고의 퍼터를 만들고 싶었다. 비싸도 좋은 물건은 꼭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그는 전 재산인 8000달러를 투자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고는 100% 수작업을 통해 고급 퍼터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퍼터는 300달러. 당시 가장 비싼 퍼터가 79~83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주위에서는 ‘미친 짓’이라며 6개월 이내에 망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매주 대회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선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그는 “선수들의 요구사항을 들으면 곧바로 사무실로 와서 수정을 한 뒤 다음 대회장에 다시 들고 갔다. 선수들의 반응은 좋았고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93년 마스터스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93년 베른하르트 랑거(독일)가 마스터스에서 캐머런의 퍼터로 우승하면서 주문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자는 유혹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94년 어느 날 아퀴시네트의 월리 유라인 회장이 그를 찾아왔다.

“유라인 회장은 나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들고 찾아왔다. 유라인 회장은 ‘당신은 세계적인 퍼터 디자이너다. 세금처리·판매·유통 등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다. 그건 나 같은 사업가가 할 테니 당신은 오로지 퍼터 디자인에만 전념하라’고 설득했다.”

그는 94년 9월 아퀴시네트와 협업 계약을 했다. 아퀴시네트는 그에게 퍼팅 전용 스튜디오 빌딩을 지어줬다. 그는 이곳에서 클럽 디자인은 물론 세계적인 선수들의 퍼팅 모습을 촬영한 뒤 가장 이상적인 퍼터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퍼터의 디자인과 제작 과정까지 총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지금도 퍼터만큼은 미국 내에서만 생산한다. 중국·동남아 등 인건비가 싼 국가에서 만들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내 이름을 걸고 파는 만큼 내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크게 세 가지 퍼터를 만든다. 타이틀리스트를 통해 대량 생산되는 프로덕션 모델과 선수들을 위한 투어 모델, 그리고 컬렉터들을 위한 스페셜 제품을 제작한다. 프로덕션 모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손수 제작한다. PGA투어에서 그의 퍼터를 사용하는 선수들이 50%가 넘는다. 그는 퍼터를 제작할 때 선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 프로들 가운데 50%는 프로덕션 모델을, 나머지 50%는 그가 직접 제작한 수제 퍼터를 사용한다. 투어 모델에는 ‘서클 T’자를 새겨 넣는다.

캐머런 박물관 내부. 그의 ‘애마’ 포르쉐와 어릴때 타던 자전거도 전시되어 있다.

그는 퍼터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는다. 왕관·체리·강아지·쥐 등 다양한 모양을 새긴다. 그가 처음 제작한 클래식 시리즈 7모델(뉴포트, 코로나도, 카타리나, 라코스타, 델마, 라파, 라구나)의 이름은 모두 자신이 태어난 캘리포니아의 지명에서 따왔다. 특히 그는 수제 퍼터에 ‘009’라는 번호를 자주 새겨 넣는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까.

“특별한 뜻은 없다. 내 스튜디오 주소일 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퍼터 하나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5~7일 정도. 스페셜 제품은 일년에 보통 15개 정도만 제작한다. 스페셜 제품의 가격은 평균 1만~2만 달러(약 1100만~2200만원) 정도. 경매 사이트에서는 이 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캐머런은 “두 딸 서머(15)와 샌디(7)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뒤를 이어 클럽 디자이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서머가 디자인에 소질이 있는데 클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옷이나 퍼터 커버 디자인에만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1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돈 걱정은 안 하고 살 정도다. 내 꿈은 돈보다는 지금의 골퍼들이 나중에 나에 대해 ‘최고의 퍼터 디자이너’로 기억해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슬럼프에 빠져 있는 타이거 우즈는 나이키 클럽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고집하는 클럽이 있다. 바로 캐머런 퍼터다. 그는 우즈와 퍼팅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우즈의 퍼팅 실력은 단연 최고다. 예전에 비해 약간 허리를 구부리고 있지만 그것은 내 영역 밖의 일이다. 우즈가 원한다면 예전에 퍼팅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다. 나는 우즈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퍼터에 옮겨 주면 된다. 우즈는 아직 퍼팅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첫 우승만 한다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에 그는 박물관 내에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튜디오와 똑같이 만들었다. 심지어 나사 하나, 철근 하나도 똑같은 제품을 사용했다. 다른 샷들은 자신의 구질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퍼팅은 순간적으로 이뤄져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스튜디오에 있는 최첨단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 캐머런 퍼터를 쓰는 사람들은 이제 미국에 가지 않고도 체크를 받을 수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에도 스튜디오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캐머런 퍼터를 쓰고 있는 한국 프로의 경우 상금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선수들은 무료로 체크를 받을 수 있다. 일반인은 30분에 150달러의 비용을 지불하면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는 과학적인 진실만을 보여줄 뿐이지 절대 레슨을 하는 곳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게 ‘비싼 수제 퍼터가 더 성공 확률이 좋으냐’고 물었다.

“퍼터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올바른 자세와 일관성 있는 스트로크, 정확한 목표 설정이 이뤄져야 성공 확률도 높다. 다만 퍼팅의 경우 느낌이나 자신감이 중요하다. 수제 클럽의 경우 본인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자신감이 더 생길 것이다.”

15년 넘게 많은 프로들과 퍼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만큼 주말골퍼들을 위해 특별 퍼팅 레슨을 부탁했다.

“오랜 실험과 경험에 비춰어볼 때 퍼터의 로프트는 4도가 가장 이상적이다. 퍼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셋업이다. 체중을 양 발에 균형 있게 분배해야 한다. 스트로크는 짧은 거리에서는 클럽을 일직선으로 빼서 일직선으로 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거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인에서 인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한 눈의 위치는 볼보다 1인치 뒤쪽에 두는 것이 좋다. 몸통을 기준으로 볼보다 먼쪽에 시선을 고정하면 자신도 모르게 왼쪽을 조준하게 되고, 반대로 볼보다 몸에 가까운 쪽을 보면 오른쪽을 겨냥하게 된다.”

사메지마=글·사진 문승진 기자

에필로그

캐머런과의 인터뷰는 11일 오전 11시에 이뤄졌다. 일본 사상 최대의 지진이 발생하기 3시간40분 전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3시부터 퍼팅 스튜디오 오픈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취재진은 클럽 하우스에 모여 3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시46분쯤 갑자기 클럽하우스 로비에 있는 소파와 유리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 지진을 경험한 기자는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지진은 3~4분간 지속됐다. 당황한 일본 기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수시로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3시부터 1시간가량 오픈식이 열렸다. 오픈식이 끝난 뒤 쓰나미 경보가 울려 이후 모든 일정은 취소됐다. 캐머런은 황급히 스포츠카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골프장에 근무하는 종업원들도 서둘러 골프장을 빠져 나갔다. 기자도 택시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오쿠라 호텔로 돌아왔다. 거리는 한산했고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숙소에서 TV를 통해 지진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쭈뼛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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