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상하이 스캔들’이 주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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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1월 어느 날 스위스의 모 정신병원, 이곳에서는 청초한 젊은 미인이 전쟁 속에 정략 사랑을 나누었던 군 장교들을 떠올리며 통한의 생을 마감한다. 세계 1차 대전 때 독일의 스파이로 프랑스와 벨기에 장교들과 통정(通情)하며 연합국의 첩보를 수집했던 여인 "안네 마리"의 스파이 전설이다.

최근 주 상하이 한국총영사관 외교관들이 노류장화(路柳墻花)나 다름없는 중국여인에 놀아난 사건이 들어나 온 국민은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 국회와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단순 치정사건인지, 스파이 사건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언론 보도를 근거로 할 때 정체불명의 "덩"여인은 육체를 미끼로 사용하는 브로커로서 중국 공안 기관이나 시 정부 내 인맥을 과시하며 한심한 한국 영사들을 우롱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 미모를 자산으로 권부를 잡거나 미모로 인해 정복자와 군주들의 희생물이 된 사례도 많다. '클레오 파트라'는 "사랑은 예술인 동시에 정략의 도구임"을 보여주며, '케사르'를 활용해 이집트 내전을 종식시키고 여왕으로 군림했다. 서시는 조국 월(越)나라를 위해 고향도 사랑도 버리고 원수국인 오(吳)나라에 팔려가 희생의 애국여정을 보냈다.

허나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덩"여인은 조국을 위한 사명감으로 세작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초부터 주재국 공작기관에 의해 그녀가 한국공관에 침투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여인이 자신의 브로커 행각에 공안기관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국가정보적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주요 인사들의 비상 연락망이 외국에 유출된 사건은 큰 보안사고다. 게다가 만약 중국 공작기관이 개입되었다면 이는 상대방의 약점을 조성 후 포섭하는 방법인 "honypot(성관계를 활용한 공갈 협박 술) 공작 개연성도 엄연히 존재한다. 한 국가의 주요인사 비상연락망을 "큰 정보가치가 없는 자료"라고 한다면 이는 정보나 보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마추어 행정관료나 논객들의 판단이다.

사소한 첩보가 결정적인 정보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 동독 정보기관은 서독 내 미군 유도탄 기지의 청소부를 이용, 하찮은 쓰레기통에서 나토군 병력배치도와 무기재고 등의 보물을 수집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은 "일본의 미드웨이 섬 공격 첩보가 미군에 의해 암호 해독되었다"는 미국 "시카고 트리뷴"지의 공개 정보를 무시했다가 미군에 의해 대패했다. 또한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의 사신이 "공명께서는 밤 늦게까지 군무에만 힘쓰며 식사는 조금만 하신다"는 간단한 안부 말만 듣고도 " 공명의 목숨이 길지 않다"는 정확한 판단을 했다. 사소한 정보가 대세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례들이다.

이 사건을 처리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도 문제가 많다. 중국을 의식해서 수사의 주요 대상인 "덩"여인에 대해 수사요구조차 못하는 것은 분명 저자세 외교다. 국제사건에서 한국인만 잡아 신문한다고 진실의 실체가 밝혀지기는 어렵다. 향후 유사 사건 처리를 위한 ‘스팩축적’과 여타 사안에 대한 외교적 균형성 차원에서라도 일단 중국 측에 공정한 수사요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든 말든 그것은 중국 측의 몫이다. 향후 우리도 그에 상응한 대접을 하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국격’을 크게 손상시킨 영사들의 비리와 치정, 그리고 내분 등에 대해서도 검찰이나 국정원 등 전문 수사요원들을 동원, 엄정한 수사를 진행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외교학의 대부 Harold Nicolson 경은 외교관의 덕목으로 진실, 충성, 정확, 인내 등 7가지를 들고, 지식이나 통찰력 등은 기본이라고 했다. 우리 외교관들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한 중국 유부녀를 놓고 비리와 애정행각을 벌인 이 사건을 두고 니콜슨 경은 어떻게 평할지 참담한 심경이다.

어디 상하이 사건뿐인가? 전 몽골주재 한국 대사는 "현지처를 두고 사생아 까지 만들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외교관들의 자질과 충성심, 청렴성, 보안의식 등을 철저히 검증해 선발하고, 파견된 후에도 관리감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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