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장군을 직접 만나다니 … ” 91세 노병 등장에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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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주최한 백선엽 장군 초청 독자 조찬특강의 반응은 뜨거웠다.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열린 한 시간여의 특강이 끝나자 참석했던 청중이 백선엽 장군(앉은 이)의 테이블로 모여들어 기념 촬영과 함께 백 장군의 사인을 요청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안성식 기자]


“백 장군이다” “야~ 아직 정정하시네….”

 16일 오전 7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 중앙일보가 지난 1년2개월에 걸쳐 연재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 회고록의 주인공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장내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그렇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행사는 중앙일보가 지난 2월 28일 총 277회의 연재를 마친 백 장군에게 독자들을 상대로 특강토록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절찬리에 연재를 마친 회고록의 주인공 백 장군은 대한민국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6·25전쟁의 영웅이다. 지면에서 접해온 명장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는 관중들의 설렘은 아주 컸다.

백선엽 장군이 스크린을 바라보며 6·25전쟁 당시의 상황을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잘난 이도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장병의 영웅적인 활약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을 것입니다.”

 마이크로 울려퍼지는 백 장군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리면서 장내의 분위기는 바로 60년 전의 전쟁으로 빠져들어갔다. “김일성의 군대가 남침을 시작하자 도쿄에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본국 정부에 ‘지체 없이 미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한국은 끝’이라고 절규해 결국 미 지상군이 들어왔다”며 “지난날을 회고할 때에는 눈물밖에는 달리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백 장군은 이어 영사막에 자신이 모아놓았던 전쟁 사진을 한 장씩 올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대한민국이 존망의 위기에 빠져 있던 1950년 8월의 대구 북방 다부동의 낙동강 교두보가 등장했고, 평양에 입성하는 국군 1사단, 청천강을 넘어 북진하는 아군의 모습이 차례로 이어졌다.

 “6·25전쟁은 적 둘을 상대로 벌인 싸움이었어요. 하나는 김일성의 군대, 또 하나는 중공군이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적의 역량은 중공군이 8, 북한군이 2였습니다. 국제전이 이 땅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백 장군은 60년 전의 전쟁을 이렇게 규정했다.

 51년부터 휴전 직전인 53년 7월까지 벌어졌던 아군과 중공군의 휴전선 근처에서의 고지전 지도가 영사막 위에 떠올랐다. 치열했던 전투를 회상하던 백 장군은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게 없습니다. 이 점은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땅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라고 강조했다. 숙연함에 젖어 있던 장내에 박수소리가 힘차게 터져나왔다. 박수는 한동안 그치질 않았다.

 “준비 없는 나라는 결국 재난을 당합니다. 비참했던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국민들이 노력해 오늘날의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희생과 공헌이 없으면 민족과 국가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앙일보 연재를 통해 이런 점을 여러분에게 호소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위해 공헌하시기를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병의 당부가 끝나자 장내는 다시 오랜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모두연설에 나선 본사 박보균 편집인은 “일류 선진국가가 되는 첫째 조건은 자신이 걸어온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며 “중앙일보는 백 장군 회고록을 통해 대한민국의 뿌리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역사 갈증을 충족시켰다”고 말했다.

 행사는 대성황이었다. 행사 진행을 맡았던 문화마케팅 전문업체 중앙컬처스클럽의 최진우 대표는 “예약을 통한 참가신청 형태로 독자를 모신 조찬 행사인데 예약을 한 뒤 불참한 사람의 비율이 2% 미만인 행사는 처음이다”며 “행사가 끝난 뒤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못해 후회된다’ ‘계속 이런 행사를 열어야 한다’는 전화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 참석을 위해 전화와 e-메일로 신청한 독자는 1500여 명. 선착순 300명 정원은 신청을 받은 지 3시간여 만에 넘어 특강 장소 사정을 최대한 감안해 50명을 더 받기로 했을 정도다.

 그런 과정을 거쳐 참석했던 관중들은 특강이 끝난 뒤에도 백 장군 곁에 몰려들어 떠날 줄 몰랐다. 윤창의(83)씨는 “전쟁을 겪은 사람으로 그때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눈물이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고 말했다. 최연소 관중인 이동엽(14·서일중)군은 “평소 백선엽 장군 회고록을 애독하다가 어머니를 통해 신청했다”며 “학교를 하루 쉬고 나왔는데,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많은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전화를 걸어온 한 독자는 “행사는 아침 7시30분에 시작인데, 설레는 마음 때문에 6시에 나와 커피 두 잔을 잇따라 마셨다”며 “이 행사의 감동이 아직 없어지질 않고 있다. 중앙일보의 취지가 정말 좋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역사 바로 알기 연재와 관련 행사를 펼쳐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유광종 선임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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