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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특별기고] 일본 기업에 계산없는 우정 보일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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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조환익
KOTRA 사장

이웃 일본이 사상 최악의 천재지변으로 고통받고 있다. 경제적 피해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사태를 놓고 주식시장 등 일각에서는 이런 저런 계산들을 하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 기업들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떤 산업은 수혜가 예상되고, 또 다른 산업은 어떻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웃 일본의 비극에 대해 그렇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소비자들은 지금 한국 기업과 제품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물론 엔고나 한국 제품의 품질이 좋아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한류(新韓流) 덕이 가장 크다고 본다. 물론 한류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7~8년 전에는 배우 배용준이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특히 중년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당시의 한류는 한국 제품 소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배용준은 배용준이요, 한국 제품은 한국 제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요즘 신한류에 빠진 것은 일본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한류 스타를 통해 한국과 한국 상품에까지 호감을 갖게 됐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와 갤럭시탭이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그 영향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전자제품으로 일본을 공략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 아닌가. LG도 3차원(3D) TV로 일본 시장에서 새로이 승부를 걸고 있다. 물론 이들 제품이 인기인 큰 이유는 기술과 디자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일본 소비자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한국과 벽을 쌓고 있었더라면 과연 갤럭시S가 1위를 하는 게 가능했을까.

 신한류 영향을 받은 일본 소비자들은 그렇게 스스로 한국에 다가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참변이 일어났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잘 하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속 빗장을 확 풀어버릴 수 있다. 만성적인 대일본 무역 역조를 어느 정도는 완화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잘못하면 등을 돌리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 국민·기업·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진짜 이웃임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잠시 일본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기 힘들어졌다고 국내 기업들이 바로 거래선을 바꾸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을 부를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일본의 협력사와 동반성장한다’는 관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어떨까. 이웃이 어려울 때 우리의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6만 명이 넘게 숨졌다. 당시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갑자기 쓰촨성에 가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그 이유를 “10년 걸릴 일을 1년으로 당기기 위해”라고 밝혔다. “참된 이웃 사랑을 중국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고, 그 공감대 위에서 10년 걸려 이룩할 과제들을 1년 안에 마무리짓겠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나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진이 나자마자 쓰촨성 내 굴삭기 총동원령을 내려 1700대를 복구 현장에 투입했다. 이재민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는 소식에 내의 10만여 벌을 나눠주기도 했다. 쓰촨성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그뒤 쓰촨성에서 박람회가 열렸을 때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중국 총리가 한국 전시관을 전격 방문했다. 그는 나에게 “한국이 대지진 때 도와줘서 고맙다. 그래서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금 또 다른 이웃 일본이 지진으로 신음하고 있다. 계산하지 말고 신속하게 모든 정성을 다해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때다. 일본이 한국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할 때, 일본시장도 더 많이 열리게 마련이다.

조환익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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