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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착륙한 센다이 공항, 1시간40분 뒤 쓰나미가 덮쳤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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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한 야구장이 12일 강진과 침수 피해를 당해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호쿠(東北) 지역을 덮친 강진으로 스포츠 시설도 큰 타격을 입었다. [미나미소마 교도=연합뉴스]

지진 때문에 고속도로에 갇힌 안양 한라 선수들이 지쳐 버스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안양 한라 제공]

“1박2일이 열흘 같았습니다.”

 12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은 악몽 같았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몸서리쳤다. 그들은 대지진이 습격한 일본 동북지방 한복판을 누볐다. 그러나 용케 불상사를 면하고 선수단 25명 모두 무사히 귀국했다. 양승준 안양 한라 사무국장은 “하늘이 도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라팀은 11일 인천 국제공항을 떠났다. 일본의 도호쿠 프리블레이즈 팀과 아시아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라팀은 지난해에 이어 2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이날 낮 12시20분 한라팀이 도착한 곳은 일본 동북지방의 관문 센다이 공항. 화창한 날씨가 그들을 맞았다. 장비를 챙기고 고속도로에 진입한 일행은 예정대로 점심식사를 위해 구니미 휴게소에 내렸다. 그때 지진이 엄습했다. 양승준 사무국장은 “고속주행 중이었다면 버스가 전복될 수도 있었다는 운전기사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고 전했다.

 고속도로는 즉시 운행이 중단됐다. 국도로 빠지기 위해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눈앞에 보이는 나들목까지 나가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국도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공격수 김홍일은 “산 전체가 흔들리고 버스가 넘어질 듯한 진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느껴보는 지진이 신기했을 뿐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로에 갇혀 있으면서 버스 안의 TV로 대지진의 피해상황이 속속 전해졌다. 소란하던 버스 안은 이내 조용해졌다. 몇 시간 전 빠져나온 센다이 공항이 침수돼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직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선수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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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로 예정된 챔피언 결정전은 취소됐다. 이제 돌아갈 일이 문제였다. 대지진 소식을 접한 한라그룹 비서실도 비상체제로 돌입했다. 한국에서 니가타와 아키타에서 뜨는 비행기를 수배해 선수단에 이동하라고 연락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폐쇄돼 니가타에 갈 수 없었다.

 민지영 한라 구단 차장은 “고리야마 호텔이 9층 건물이다. 지진을 겪어보지 못한 터라 높은 건물은 더 겁이 났다. 후쿠시마 공항이 폐쇄됐지만 그래도 공항에서 노숙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버스는 후쿠시마 공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도를 빠져나온 버스는 논길을 내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전이 길을 막았다. 민 차장은 “온 마을이 전부 불이 꺼져 암흑에 갇힌 상황이 됐다. 결국 호텔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호텔은 아수라장이었다. 로비는 인근 주민과 안전 문제로 다른 호텔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호텔에서는 “그릇이 다 깨져 식사를 준비해줄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선수들은 편의점에 흩어져 먹을거리를 찾았다. 공격수 김상욱은 “싱글룸을 배정받았지만 혼자 잘 수 없었다. 삼삼오오 한 방에 모여 밤을 보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TV를 계속 켜놓았다. 방문도 계속 열어 놓았다”며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귀국길은 여전히 문제였다. 12일 오전 1시 후쿠시마 공항이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12일 오전 7시쯤 아시아나항공이 예정대로 비행편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장비를 실을 트럭이 없어 홈팀인 도호쿠 프리블레이즈 구단 직원들이 승용차와 밴을 몰고 와 도와줬다. 곧바로 후쿠시마 공항으로 가 대기했다. 하지만 뜬다던 비행기는 여전히 인천공항에 있었다. 예정보다 2시간 늦은 낮 12시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 오후 2시20분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다.

 김상욱은 “그때처럼 한국 비행기가 반가운 때는 처음이었다. 승무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40분 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폭발했다. 고리야마에서 40㎞쯤 떨어진 곳이었다. 애타게 선수단을 기다리던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부부와 선수 가족들은 선수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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