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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8의 도카이 대지진,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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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06면

쓰나미로 휩쓸려 온 대형 선박이 12일 폐허가 된 일본 미야기현 게센누마시가지에 건물 잔해더미와 함께 방치돼 있다. [게센누마=교도 연합뉴스]

일본은 지진과 공생하는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지각 운동이 활발한 지역인 환태평양 지진대에 국토가 위치한 데서 비롯된 숙명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지진의 10%는 일본 열도에서 일어난다. 인체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 지진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300건의 지진이 일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지진 연구가 가장 발달돼 있고 대비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으며 거대 지진에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재앙을 인간이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도호쿠 대지진 일본 열도, 계속되는 공포

이번 지진 역시 일본 정부나 지진학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고베 대지진의 180배에 이르는 위력과 4개의 진원지에서 ‘연동형’으로 일어난 지진의 양상 모두 일본 정부의 표현대로 ‘소테가이’(想定外·‘예상 밖’이란 뜻)였다. 일본 정부 산하 지진조사위원회의 아베 가쓰유키(阿部勝征) 위원장은 “지진 연구의 한계”라고 고백했다.

지진조사위원회는 향후 30년 이내에 규모 7.0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진원지별로 나눠 발표한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최신자료에는 이번 지진이 발생한 도호쿠(東北) 지방 산리쿠(三陸) 연안에서 지바(千葉)현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포함돼 있다. 특히 지진 빈발 지역인 미야기(宮崎) 연안에서 30년 안에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99%로 예상했으니 장소는 맞춘 셈이다. 하지만 산리쿠 등 네 곳의 진원지에서 동시에 또는 짧은 간격으로 잇따라 지진이 일어나는 ‘연동형’ 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그 규모도 7.5로 전망했다. 실제 일어난 지진은 그보다 90배 위력의 규모 8.8 이었다.

일본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대비 중인 미래의 지진은 ‘도카이(東海) 대지진’이다. 도카이 대지진은 1969년 지진연구의 권위자 모기 기요오(茂木淸夫) 도쿄대 교수가 발생 가능성을 제기한 이래 30여 년간 일본 지진학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진조사위원회의 예측 자료에서 도카이 대지진만은 발생 확률을 수치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적혀 있다.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음.” 예상 규모는 8.0이다. 도카이 지방은 도쿄 서남쪽 시즈오카(靜岡)현의 스루가(駿河)만 일대다. 바다 쪽 필리핀해 판과 육지 쪽 유라시아 판이 만나는 경계점에 있으며, 진앙이 얕아 지표면에서의 위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지진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카이 지진 판정회’를 기상청 주재로 열어 해당 지역의 지각활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시즈오카현은 10여 가구 단위로 정기 피난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도카이 지진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지진 주기설’에 따른 것이다. 땅속 지각판의 운동이 안정화-활성화 등의 단계를 거치며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도카이 지역에서는 1600년 이후 대략 90∼150년 간격으로 발생해 왔으며 1854년 규모 8.4의 지진 이후 지금까지 잠잠한 상태다. “이제 뭔가 터질 때가 되었다”는 공포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스루가만 인근 지역에는 하마오카(濱岡) 원자력발전소가 있어 원전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도카이 지진 우려가 제기된 뒤인 1970년에 착공된 것이어서 지진 전문가들이 가장 비판하는 부분이다.

도카이 지진이 이 지역보다 서쪽에 있는 도난카이(東南海)와 난카이(南海)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동시에 발생하거나 짧은 간격을 두고 잇따라 일어나는 연동형 지진이 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이 경우 위력은 규모 9에 육박하고 시코쿠(四國) 지방에서 시즈오카현까지 광범위한 지역이 피해를 보게 된다. 2만5000명이 숨질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전례도 있다. 1707년 일어난 규모 8.6의 호에이(寶永) 대지진이 바로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의 3연동 지진이었다.
더 끔찍한 시나리오도 있다. 도카이 지진이 후지산 인근의 단층대를 활성화해 후지산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다. 일본 언론에선 가끔 그 가능성을 짚어보는 기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싫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도카이 지진과 후지산 폭발이 동시에 일어나는 묵시록적 복합 재앙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가 2006년에 제작된 ‘일본침몰’이다.

도카이 지진 못지않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수도직하형(首都直下型) 지진’이다. 이는 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아니라 도쿄나 인근 지역의 땅 밑에서 지진이 발생해 인구밀집지역을 덮친다는 뜻이다. 발생 지역의 지명을 따 미나미칸토(南關東) 지진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진 규모가 작더라도 발생 장소가 대도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은 규모 7.3으로 이번 지진에 비하면 위력이 180분의 1에 불과했지만 대도시에서 발생해 6400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수도직하형 지진이 30년 이내에 일어날 확률은 70%로 본다. 도쿄 지방에서는 230년 간격으로 규모 8 안팎의 거대 지진이 일어나고, 한 번 지진이 일어난 뒤에는 70∼80년간 휴지기에 들어갔다가 다시 지각 활동이 활발해져 규모 7 급의 대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70년이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도쿄 지역이 활성화 시기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이번 도후쿠 대지진이 도카이 지진의 전주곡이 될 것이란 예측은 섣부른 것일 수 있다. 일본 기상청은 “이번 지진을 일으킨 지각판(태평양 판)은 도카이 지진을 일으키는 지각판(필리핀해 판)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과 일본 정부의 도카이 지진 공포는 더 가중되고 있다. 거대 지진의 위력을 생생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최대한의 노력으로 재앙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 그것만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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