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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100년 영욕이 서린 '경성교도소 307호' 사진전

중앙일보

입력


춘천에 사시던 큰아버지 댁 바로 옆에는 춘천교도소(구 경성감옥 춘천분감)가 있었다. 넓고 평탄한 교도소 앞 공터는 자전거를 타고 놀기에 딱이었다. 그러나 높은 담에 둘러싸인 교도소는 어린 마음에 너무나 커보였다. 그리고 무서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교도소 안은 어떤 모습일까.

중국 연변대학교 사진과 교수로 재직중인 사진가 류은규. 그가 일반인에겐 출입금지 구역인 교도소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했던 것은 1982년.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춘천교도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약사동에 있던 교도소가 동내면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가 찾아갔을 땐 이미 수감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아무도 없었다. 텅빈 교도소를 지키던 입구의 경비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그는 마침내 출입을 허락 받았다.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절대 사진을 다른 곳에 공개하지 말 것.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촬영을 한 후 이 사진들을 약 30년 동안 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사진들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춘천교도소가 경성감옥 춘천분감으로 건립된지 100년이 되던 해부터다. 춘천교도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진에 기록된 건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교도소가 가지고 있는 옛 사진자료도 제공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랜 시간 간직해온 사진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작업을 두고 "나 스스로도 사진에 대한 의미나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가의 사명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1909년에 건립된 옛 춘천교도소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많은 흔적을 남겨둔 중요한 국가 시설이었다. 양구 출신 의병장 최도환 등이 일제강점기 당시 이 곳에서 투옥 중 순국했다. 그 당시 이 곳은 일제의 국권침탈을 저지하려는 항일 의병을 수감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미군정 시기에는 '폭동 음모사건', '직원 월북사건'등 좌·우익 극한 대립의 장이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에는 춘천교도소가 박격포탄의 공격을 받아 수용자 1천250명을 직원 70명이 직접 인솔해 수원에 있는 임시 수용시설로 이송 중 수용자가 총기를 탈취해 교도관과 교전을 벌이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투옥돼 춘천교도소에서 2년여간 수용생활을 한 바 있다.

이후 1981년 교도소는 동내면 거두리로 이전했다. 약사동 본래 교도소 자리는 현재 아파트 단지가 되어 그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옛 춘천교도소, 류씨는 자신의 필름에 기록되어 있는 당시의 모습들을 모아 대학로에 위치한 '공간 루'에서 사진전 '307호(號)/경성감옥 춘천분감'을 준비했다. 그는 "이번 사진전이 잃어버린 흔적을 찾아 나서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동시에 역사의 미궁을 찾는 학자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의:02-765-1883· www.spacelou.com)

온라인편집국=유혜은 기자 yhe11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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