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대익 ‘다윈의 정원’

수쿠크법·무릎기도 논란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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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국제무역센터가 테러범들에 의해 순식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자살 테러가 자행되었을까? 그것은 분명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종교 때문이다.” 9·11테러 직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이다. 그는 “내세를 가르치는 종교는 사람들을 언제든 살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이라고까지 말했다. 끔찍한 자살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하긴 했어도, 나는 처음에 그가 이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종교가 살인 바이러스라니! 알카에다 같은 일부 강경 무슬림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저지른 끔찍한 테러 아닌가?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종교가 각종 범죄와 분쟁, 그리고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음을 의심하면서도,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하지만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이 『거룩한 테러』에서 치밀하게 분석했듯,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오늘도 크고 작은 성전이 끊이지 않는다. 유대교와 무슬림의 격전지인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다. 세르비아정교회와 크로아티아가톨릭의 충돌지인 발칸 반도, 무슬림과 기독교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코트디부아르, 그리고 신할라불교와 타밀힌두교가 무력 충돌하고 있는 스리랑카… 이제 ‘거룩한 테러’는 전 지구적 현상이 됐다.

 과연 한국은 예외일까? 운이 좋으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예수천국 불신지옥’철을 탄다. 불자인 시어머니와 기독교인 며느리가 제사상 앞에서 벌이는 우상숭배 논쟁은 단골메뉴다. ‘봉은사 땅밟기’를 부끄러워하는 개신교인들도 있지만, 내가 알기로 국민의 20%는 거의 매주 온 세상을 복음화할 비전으로 재무장된다. 9·11테러범들이 대학 교육을 받은 멀쩡한 중산층이었듯이, 우리 친구들도 남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유일신을 믿는다는 한 가지 사실이 모든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지만 문자 그대로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수쿠크법(이슬람채권법)이 거룩한 테러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한국여자들이 첩이 될까 봐 이슬람채권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한 개신교 목사는 대통령을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게 했다고 내심 의기양양한 듯하다(이후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는 “습관일 뿐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대통령 하야 운동을 펼칠 수도 있다”는 으름장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에 저항하면 반드시 죽는다. 교회에 대적한 국가나 개인은 반드시 망했다”고 국민의 주권을 위협하며 거룩한 전쟁을 부추기는 목사도 있다.

 물론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2005년 선교 50주년을 맞은 한국 이슬람교는 “2020전략, 대한민국 무슬림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현재 한국의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 인구의 5%에 불과한 수준이긴 하지만, 만일 그들의 비전이 성취된다면 우리도 기독교와 무슬림의 격전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 문제될 것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알라신을 위한 성전에 참여한 자는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취한다”는 믿음이 같은 방을 쓴다고 상상해보라.

 이번 논란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한국 개신교가 정교분리 원칙을 깨고 정치세력화하는 것에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유일신 종교 자체가 갖고 있는 근원적 배타성과 유통기한이 지난 믿음들을 문제 삼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인의 80% 이상이 유일신, 천국, 사후영혼, 기적, 창조설, 그리고 악마의 존재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유일신 종교가 강조하는 사랑과 관용은 대개 그들이 친 울타리 내에서의 이야기다. 기독교의 십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로부터 시작하며, 이슬람교의 쿠란은 “알라 신과 그의 사자들에게 대항하는 자들과 이 땅에서 (이슬람의 질서를) 파괴하려고 하는 자들은 목을 쳐 죽이라”(제5장 마이다 36절)고 명령한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경전이다.

 수쿠크법과 대통령의 무릎기도 논란을 통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특정 종교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것 이전에 종교 자체에 대한 진지한 회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 종교는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필두로 한 전 세계의 반종교 운동은 일부 지식인의 천박한 종교 이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 아니다. 종교의 실체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