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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에게 지면 가족 몰살 … 끝까지 싸우다 죽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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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상언 특파원

“다다다다당.”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총성은 밤에도 들려왔다. 시 외곽에서 시민군이 사격훈련을 하거나 전의를 다진다며 하늘에다 대고 총을 쏘는 것이다. 총성에 익숙해진 듯 놀라는 주민도 보이지 않았다. 리비아 인구의 약 10%인 66만500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항구도시는 8일(현지시간) 간간이 총성이 들리는 가운데서도 평상의 모습이었다. 지난달 22일 카다피 세력이 모두 달아난 뒤 이 도시엔 시민군 임시정부인 ‘국가위원회’가 들어섰다.

 시내엔 차들이 분주히 오갔고, 대형 수퍼마켓을 포함해 상당수 상점이 문을 열어 일상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로 집권하기 전 리비아 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에선 차량·공공건물·주택 등에 반(反)카다피를 상징하는 적·흑·녹 3색의 왕정시대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카다피 정부가 리비아 전역의 인터넷을 차단하고 국영TV가 일방적으로 그의 주장만 방송하고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위성수신기로 BBC·CNN 등을 보며 외부 소식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상 뒤에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은 이 도시에 임시정부가 있는 만큼 카다피군의 표적이 될까봐 걱정했다. 임시정부가 들어서 있는 옛 법원 건물 주변에는 이날도 시민들이 모여 국제사회가 나서 공습을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전날 벵가지에서 서남쪽으로 230㎞ 떨어진 라스라누프와 인근 지역에 카다피군의 수호이 전투기가 나타나 시민들에게 로켓포를 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공습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4인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 몰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다피가 임시정부 대표들을 암살하기 위해 특수요원들을 투입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선지 임시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좀처럼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측 무사 쿠사 리비아 외무장관은 7일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서 풀려난 알카에다 출신 300여 명이 시민군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민군은 이를 일축했다.

 거리에서 만난 무함마드 알리(60)는 “카다피는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못할 짓이 없다”며 “유엔이나 나토가 하루빨리 리비아를 비행금지구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카다피군 공군기지를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이 전날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데 고무돼 있었다.

 공포는 ‘결사항전’ 의지로 이어졌다. 벵가지 진입로의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20대 청년은 “이미 벵가지에서만 400명이 희생됐다”며 “카다피군이 이 도시를 다시 점령할 경우 카다피 일가가 보복으로 주민들을 대량 학살할 것이므로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의 만류로 벵가지에 있지만 곧 친구들과 함께 서쪽으로 갈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카다피군이 반격을 집중하고 있는 ‘서부전선’으로 달려가겠다는 거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전이 발발한 뒤 대부분 떠났지만 대신 외국 기자들이 몰려왔다. 중심부에 있는 티베스티 호텔에만 100여 명의 취재진이 머물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이 도시에 몰리고 있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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