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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생선·삼겹살 값도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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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5일 서울 성수동의 대형마트를 찾은 주부 이소희(45)씨는 100g당 1680원 하는 국내산 삼겹살 대신 100g당 730원 하는 프랑스산 냉동 삼겹살을 집어 들었다. 맛이나 두께가 국내산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만 장 보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이씨처럼 국산 대신 외국산을 찾는 주부들이 늘고 있지만, 외국산마저 가격 급등이 임박했다.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 현상 때문에 외국산마저 공급이 달리고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 신선식품 담당 이태경 상무는 “급등하는 국내 신선식품을 대신할 만한 외국산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이상 기후로 인해 해외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물량이 부족한 데다 세계 각국 유통업체들이 먹을거리 확보에 나서면서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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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수산물 확보 전쟁=이마트 안영일 수산 바이어는 최근 태국의 주꾸미 주산지인 차암 지역으로 날아갔다. 생물 주꾸미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국내 산지에서 kg당 1만5000원 하던 주꾸미 가격은 최근 들어 2만원대까지 올랐다. 절대 물량 부족으로 이달 중 2만5000원 선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유통업체들이 생물 주꾸미를 구하기 위해 태국으로 몰리고 있는 것. 이마트는 태국 차암에서 지난해의 10배 물량을 들여오는 계약을 체결했다. 가격은 100g당 1080원으로 국내산(2280원)에 비해 약 50% 이상 싸다. 하지만 앞으로는 충분한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실정이어서 곧 가격이 10~20% 뛸 가능성이 높다고 바이어들은 말한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갈치는 더 심각하다. 요즘 제주도 등 산지에서는 생물 갈치 구하기가 어렵다. 이상 기후 현상으로 제주 앞바다 수온이 내려가 온난성 어류인 갈치가 덜 잡히고 경매량도 지난해 대비 20% 가까이 줄었다. 자연히 값이 싼 수입 냉동갈치를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외국산 갈치 값은 조만간 20~30% 뛸 가능성이 높다.

 노량진수산시장 강명일 중도매인조합장은 “생물갈치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 자연히 냉동 생선 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수입량을 늘려 오름세를 잡아야 하지만 이상 기후 현상이 전 세계적이라 필요한 만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에선 식자재와 젓갈 등에 쓰이는 파키스탄 갈치도 물량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산물 수입상은 “아프리카 말리에까지 수입상들이 돈을 싸들고 가 갈치 확보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어 역시 연근해의 저수온 현상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그동안 너무 비싸 수입하지 않았던 노르웨이와 캐나다산 수입이 늘고 있고, 정부도 가격 안정을 위해 올해 6월까지 수입물 전량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오름세를 잡기는 역부족이다. 세계적인 고등어 조업 부진으로 고등어 가격이 국제적으로도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본격 금어기에 들어가 국내 생산량이 더욱 줄어드는 다음 달엔 현재 한 손당 5500원 정도인 캐나다산 자반 고등어 값이 10~20%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일도 외국산 모자라=이마트에선 지난달 사상 최초로 오렌지 매출이 귤 매출을 넘어섰다. 1년 전만 해도 이마트 오렌지 매출이 귤 매출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올겨울 국내산 귤 작황이 나빠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오르자 사람들이 귤 대신 오렌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형마트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오렌지 수출 업체인 파라마운트사는 요즘 상한가다. 대형마트들의 수입과일 담당, 해외소싱 담당과 LA 소싱사무소 주재원이 수시로 파라마운트사를 찾고 있다.

 최근 사과·배 등 국산 과일 값이 크게 오르면서 대체 과일로 각광받고 있는 바나나도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봄이 되면 수요가 더 늘어나는데, 주요 산지 중 중남미 지역의 기상이변으로 공급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바나나 성수기인 4~5월 값이 20%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중남미 대신 필리핀 등 동남아로 공급처를 변경 중인 것도 국내 유통업체엔 부정적인 상황이다. 국내 업체들은 주로 동남아에서 바나나를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돌·델몬트·스미후루 등 3대 대형 생산 업체를 잡아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육류도 들썩=값이 급등한 국산 삼겹살은 빠르게 외국산 삼겹살로 대체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전체 삼겹살 판매량의 1%도 안 됐던 외국산 삼겹살 판매 비중이 최근 15%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외국산마저 가격이 오를 조짐이 뚜렷하다. 정부가 지난달 말 무관세 도입 물량을 1만t에서 6만t으로 늘렸는데도 그렇다. 구제역 발생 이전 kg당 4달러 수준이던 외국산(벨기에·칠레·프랑스산) 냉동 삼겹살 값은 이미 6달러로 오른 데 이어 상반기 중 8달러까지 올라갈 것으로 이마트 측은 보고 있다.

롯데마트 측은 “냉동 삼겹살은 1년 정도 창고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가격이 오를 것으로 판단한 수입업자들이 비축량을 충분히 풀지 않고 있는 것도 가격 오름세의 한 이유”라고 말했다.

최지영·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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