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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쓴맛 안보려면 한국말 제대로 익혀야"

미주중앙

입력

"노래만 잘하면 될줄…" / 심사위원과 '대화의 벽' / 어머니 "영어만 사용" 후회

한국에서 가수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떨어진 16세 소녀 메건 이가 2일 중앙일보를 방문해 ‘한국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말이 서툴러 뛰어난 노래 실력이 빛바랜 것처럼 보인 메건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이민자 사회의 자녀 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됐다. 백종춘 기자

안쓰러웠다. 노래 실력은 출중한 데 한국말이 너무 서툴렀다. 탈락 장면을 지켜본 한인들은 잠시나마 "우리 애에게 한국말을 좀 더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시청자들이야 상큼발랄한 10대 미국교포 학생의 아쉬운 탈락 정도였겠지만 미주 한인들에게는 정체성과 현지화라는 이민 사회의 고민이 떠올랐다.

노스리지에 거주하는 메건 이(16. 한국명 혜린)은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방영중인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에 도전했다. 그러나 20명의 본선진출자 선발 문턱에서 떨어졌다. 노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심사위원들은 메건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지적하며 탈락시켰다. 한국인 얼굴을 하고 한국말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한국말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는 메건도 어머니 이희정(41)씨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예선에서 "왜 그렇게 한국말이 서툴러요?"라는 심사위원들의 다그침에 메건은 자신이 혼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어떤 오디션에서도 당당하게 나섰던 그녀가 한국 심사위원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단 하나 한국말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해외 참가자에게 '부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연신 지적했다. 가수가 지녀야 할 능력 가운데 하나인 가사 전달력과 표현력에서 뒤진다는 것이다. 두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심사위원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 문제를 자꾸 지적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팝송을 제대로 표현합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메건은 발음에 신경 쓰느라 가사를 잊기도 했다. 잊은 가사를 허밍으로 처리하면서도 노래의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한국말 때문에 실력이 묻혀질까봐 마음 졸였어요. 가사도 통째로 외우며 최대한 곡이 전하는 느낌을 심사위원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외모에 대한 지적도 있었어요. 성형하고 나오지, 살 좀 빼고 나오지 등 내 노래 보다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할 때 참 마음이 아팠어요."

어머니 희정씨는 "어릴 때부터 영어로만 대화했다"며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 아이에게 이렇게 큰 상처가 될지 몰랐다”고 답답한 당시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탈락한 이유가 더 뛰어난 경쟁자에 의한 것이라고 (메건이) 생각했으면 한다. 한국어 발음 때문이라고 말하면 메건이나 나나 더 힘들 거 같다"고 말했다.

메건은 기자에게 "이번 오디션에서 한국 노래 가사를 외우며 한국말 표현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며 "이제 엄마는 물론 LA에 사는 한국 친구들과도 최대한 한국말로 의사소통 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메건에게 ‘한국에서 좋았던 것’을 물었다.

"눈 내리는 것이 좋았다. 한국의 이번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그냥 길거리를 걸으면서 눈을 맞는 게 좋았다. 떡볶이, 붕어빵, 오뎅 국물 등 길에서 파는 분식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교복을 입은 내 또래 친구들이 재잘거리며 분식을 먹는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다.

모든게 가까이 있었다. 물 하나를 사려고 해도 미국에서는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100미터마다 하나씩 있는 24시간 편의점이 정말 편리했다. 한국 드라마에 교복을 입은 모습을 실제로 보니 너무 좋았다. 학용품도 싸고 좋았다.

민속촌, 경주 불국사, 독립기념관을 모두 구경했다. 아빠에게서 들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고왔다.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는 눈물이 났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 군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억울했다. 하지만 이번 방문으로 한국을 더 많이 알았고 내가 한국인이라는것이 자랑스러웠다."

김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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