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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미성과 강한 호소력

중앙일보

입력

런던 로열 알버트홀(6천5백석)은 원래 로마 원형경기장을 본따 만든 돔식 건물이다. 시즌 때는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여름에는 3개월간 프롬스 음악제가 열리는 곳이지만, 이밖에도 테니스 대회.권투경기.모터쇼.팝콘서트.기업설명회.서커스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지난 4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테너 호세 카레라스 내한공연을 지켜 보면서 문득 로열 알버트홀이 떠올랐다.

국내외 팝가수 공연이나 전당대회 등이 자주 열리는 체조경기장.역도경기장.펜싱경기장 중 하나를 아예 공연과 이벤트 장소로 개조하면 어떨까.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객석의 4분의1 위에 무대와 조명.음향을 가설하는 것보다 공연.행사용으로 음향.조명시설을 추가하고 이름도 '올림픽홀'로 하면 어떨까.

어쨌든 92년 루치아노 파바로티, 95년 플라시도 도밍고에 이어 호세 카레라스도 체조경기장 무대에 섰다.

94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공연에 이어 5년만의 내한공연이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은 개런티(34만달러)를 지불했고 가장 비싼 입장료(R석 15만원) 기록을 수립한 공연이다.

입장료가 왜 이렇게 비싼가 하면 입장권 판매 예상액의 15%를 할부대관료, 7%를 문예진흥기금으로 선납해야 하는 올림픽공원내 체육관의 대관규정 때문이다.

카레라스는 게스트 성악가가 한 명도 없어 코리안심포니(지휘 데이비드 히메네즈)가 연주하는 서곡.간주곡을 빼면 혼자 무대를 이끌어 가야했다.

요즘 유행하는 크로스오버나 팝송은 거의 부르지 않았지만 본격 오페라 아리아는 마이어베어의 '아프리카의 여인'중 '오 낙원이여' 한곡만 불러 아쉬웠다.

특이했던 레퍼토리는 스페인식 오페레타인 사수엘라 '신의 영혼'(세라노 작곡)중 '헝가리의 노래'.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에 가사를 붙인 '아랑후에스'도 눈길을 끌었다.

전체적으로 성량이나 스케일은 작았지만 귀족적인 용모와 유연한 미성(美聲)과 섬세한 표현으로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또 앙코르곡으로 '돌아오라 소렌토로', '목소리와 밤', '산타루치아', '오 나의 태양', '왜 너는 울지 않고' 등 5곡의 나폴리 민요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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