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김영길 집배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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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편 배달할 게 많아 아파트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던 30대 집배원이 계단에서 넘어져 숨졌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이 집배원은 쓰러진 지 15시간이 지난 뒤에야 배달 경로를 더듬어 온 동료 집배원에게 발견됐다.

 3일 오전 7시50분쯤 인천시 남동구의 한 아파트 16층 계단에서 우체국 집배원 김영길(32·사진)씨가 숨져 있는 것을 동료 직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한 동료 집배원은 “전날 배달 나간 김씨가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 동료들이 김씨의 배달구역을 역추적했다”며 “아파트 입구에 배달 오토바이가 있어 올라가 보니 김씨가 계단에서 얼굴이 손상된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가 2일 오후 3시쯤 아파트 16층에 소포를 배달한 뒤 계단으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고 이때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쳐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 당시 김씨는 오른쪽 장갑을 입에 물고 있었고, 시신 옆에 메모지와 볼펜이 떨어져 있었다.

인천 남동경찰서 관계자는 “김씨가 메모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진 것 같다”며 “신축 아파트라 바닥이 대리석으로 돼 있어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 것은 배달 업무가 많아서였다고 한다.

김씨가 소속돼 있던 남인천우체국 관계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달을 하다 보면 오래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럴 때 집배원들은 계단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숨을 거둘 때까지 아파트 주민들은 그를 보지 못했다.

 미혼인 김씨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생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좌우명은 ‘항상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살자’였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씨가 방치돼 있는 동안 우체국 측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체국 측은 오후 8시가 넘도록 직원이 복귀하지 않자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을 뿐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우체국 관계자는 “배송 이 늦어져 배달하는 중으로만 알았다”고 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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