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트리플 악재 … 정부 ‘성장론’ 쑥 들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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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등하는 물가가 경제 정책 방향과 큰 틀의 정책 수정 개념 정의가 필요하겠다. 2일 긴급 물가안정 관계부처 장관회의 직후 임종룡 기획재정부 차관은 “상반기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물가안정에 두겠다”고 밝혔다. 성장과 안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던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이 안정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올 경제를 ‘5% 내외 성장, 3% 수준 물가’로 예상했다. 무게는 성장 쪽에 더 가 있었다. 대부분의 민·관 경제 관련 기관들이 성장률을 4%대로 예상했지만 정부는 5%를 고수했다. 경기 흐름이 상대적으로 불안할 것으로 보이는 상반기에 재정을 빨리 투입해 성장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런 분위기는 두 달 만에 확 바뀌었다. 구제역·한파·유가급등 등 ‘트리플 쇼크’에 연초부터 물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치솟으면서다. 결정타는 중동발 오일쇼크다. 유가 급등은 물가는 물론 물가 불안 심리도 자극했다. 소비자물가는 올 들어 두 달 연속 4% 넘게 올랐고 이제는 5%대 진입을 걱정할 처지다.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도 인플레 기대심리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외식비(3.5%)·미용료(5.2%) 등 서비스 부문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유가급등은 물가를 넘어 경제 전체를 흔들어 놓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연간 물가 목표치는 ‘국제유가=연 평균 배럴당 85달러’를 전제로 세운 것이다. 하지만 중동 지역의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연평균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욱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최근 유가 상승은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며 “중동 불안이 해소되더라도 정부 전망보다는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은 아직 성장 목표의 수정은 없다는 쪽이다. 임 차관은 “쉽지 않은 여건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정부의 전반적인 경제 전망을 수정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은 뒤로 뺀 모양새다. 지난달까지 주로 ‘공급 쪽 충격’을 강조하던 정부는 이달 들어 부쩍 ‘수요 쪽 요인’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다. 그간 ‘성장’에 대한 미련 때문에 쉽게 손대지 못했던 금리·환율 등 거시적 수단을 활용할 여지가 커졌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다만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소비가 줄어들 위험이 있으므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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