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페셜 리포트] 신용카드사들 “ 통신사가 무섭다” … 막오른 2차 카드 대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신용카드 2차 대전’이 시작됐다. 1차 대전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도입된 1999년부터 카드사태가 난 2003년까지 벌어졌다. 길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아무에게나 카드를 내주는 ‘몸집 불리기’에 전념하다 모두가 공멸할 뻔했다. 2차 대전의 양상은 다르다. 금융회사가 아닌 통신사들이 뛰어들며 ‘이동통신(모바일) 대 금융사’ 간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카드사태 부실로 은행에 합병했던 카드사들도 다시 분사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회사원 강영빈(30·여)씨는 요즘 지갑이 얇아졌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신용카드 서비스에 가입해 플라스틱 카드가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생일인 지난 1일에도 스마트폰만 손에 쥔 채 친구들을 만났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음식점을 골라 들어간 뒤 카드 대신 휴대전화로 결제를 했다. 강씨는 “신용카드뿐 아니라 멤버십 카드도 휴대전화에 담아둘 수 있어 편리하다”며 “은행의 종이 통장처럼 플라스틱 카드도 차츰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 같은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009년 SK텔레콤이 하나금융지주와 합작해 하나SK카드를 설립하고, KT가 BC카드를 사들이기로 한 이유다. 이강태 하나SK카드 사장은 “휴대전화와 카드의 공통점은 모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라며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증가로 모바일과 카드의 융합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SK카드는 설립 이후 1년여 만에 기존 하나카드의 시장 점유율 3.6%를 5.1%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3월 출시된 모바일 카드 ‘터치시리즈’의 가입자는 50만 명, 이 중 모바일 카드를 실제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7만 명에 이른다. 회사 관계자는 “모바일 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한 달마다 두 배로 늘고 있다”며 “앞으론 플라스틱 카드 대신 모바일 카드만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의 라이벌인 KT도 카드시장 진출에 나섰다. 지난달 BC카드 인수를 공식화한 KT는 신한카드·우리금융지주 지분을 사들인 데 이어 부산은행 등과도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35%가량의 지분을 일단 확보한 뒤 보고펀드 지분 등을 추가 인수해 경영권을 행사할 계획이다.

 금융권은 긴장하고 있다. 이동통신과 카드사업이 다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어느 사업보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현직 시절 “통신회사가 가장 두려운 경쟁 상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선 단말기와 통신망이 필요한 네트워크 사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휴대전화와 카드 결제 단말기, 무선망과 유선망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객데이터베이스도 겹친다. 카드를 이용하는 고객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고객 수는 통신사가 훨씬 많다. SK텔레콤의 이동통신 고객이 2500만 명인 데 비해 최대 카드사인 신한카드 고객은 1700만 명이다. 현재 영업 중인 이동통신사는 3개뿐이지만 카드사는 은행계 6개, 전업계 14개 등 모두 20개에 달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고객의 신용 등 질적인 수준에서 카드사가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착각”이라며 “신용이 악화되는 첫 단계는 휴대전화 요금 연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에서도 “카드가 없어도 전화를 할 수 있지만 전화가 없으면 카드를 쓸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KT의 BC카드 인수 과정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KT는 일부 금융사가 갖고 있는 지분을 인수하며 ‘바이 백(buy back)’ 계약을 맺었다. ‘카드 결제 대행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카드 발급 업무에 나설 경우 금융사들이 판 지분을 언제든지 회수한다’는 내용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통신사가 카드업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자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의 전열 가다듬기도 본격화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2일 국민은행 카드부문을 분사해 KB카드를 출범시켰다. 우리금융과 농협도 카드부문 분사를 추진하거나 검토 중이다. “보수적인 은행 문화에선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KB카드의 설명이다.

 카드시장이 꾸준히 커지는 것도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난해 카드 이용액은 518조원으로 버블이 한창이던 2003년 수치를 넘어섰다. 특히 카드를 실제 쓴 신용판매 금액이 크게 늘어났다. 카드사들의 이익도 짭짤해졌다. 신한카드의 순익은 지난해 1조1000억원(연결 전 기준)으로 지주사 전체 순익의 35%에 달했다.

 남명섭 금융감독원 여신전문서비스실장은 “카드산업은 금융 중에서도 모바일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기 쉬운 분야”라며 “부실여신 급증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