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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은 ‘주폭과 전쟁’ 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충북 진천군 광혜원에 사는 이모(35)씨. 이씨는 지난해 9월쯤부터 술만 마시면 주변 사람을 폭행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눈에 보이는 사람을 때리고 욕하며 괴롭혔다. 이웃들은 “뭐가 무서워서 피하냐”라며 이씨의 폭력을 방치했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날뛰던 이씨도 법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이씨는 최근 진천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흉기로 주인을 협박하고 출동한 경찰관이 보는데도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를 현행법으로 붙잡아 구속했다. 이씨는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서 그랬다”고 변명했지만 경찰은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삼은 이씨를 ‘주폭(酒暴)’으로 규정했다.

 충북지방경찰청의 ‘주폭과의 전쟁’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주폭은 술을 마시고 상습적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거나 시민들에게 폭행·협박을 가하는 사회적 위해범을 지칭한다. 조직의 힘을 빌려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용판 충북경찰청장은 지난해 9월 취임 직후 “경찰서에 와서도 저렇게 행패를 부리는 데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오죽했겠느냐”며 엄정한 법 집행을 주문했다.

이후 충북경찰청은 각 경찰서에 주폭 전담수사반을 편성, 주폭 검거에 나서 올 2월까지 20여 명을 구속했다. 특히 공무집행방해사범 발생은 월 평균 36.5명에서 26.4명으로 크게 줄었다. 전담수사반이 꾸려진 뒤 구속영장 기각률이 0%로 줄었다. 지난해 1~10월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인원 23명 중 19명이 발부돼 기각률이 17%에 달했지만 10월 이후에는 8명 모두 영장이 발부됐다.

주폭의 폭행에 시달렸던 주민들은 “행패를 부리던 사람이 포악한 성격이라 신고도 꺼렸는데 경찰이 알아서 잡아가주니 고맙다. 해방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주폭 근절이 성과를 거두자 민간기업과 대학, 운전자협회 등 시민들의 동참도 잇따랐다. 가장 먼저 지난달 1월 ㈜충북소주가 자사 제품인 ‘시원소주’에 주폭을 척결하자는 문구를 넣으며 홍보에 나섰다. 음식점 업주들은 골목 곳곳에 주폭예방 현수막을 걸고 도내 1만7000여 개 회원업소에 홍보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했다. 충북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2600여 대의 택시에는 ‘주폭은 이제 그만!’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졌다.

 충북지역 대학들도 주폭 근절에 참여했다. 충북대와 서원대, 청주교대, 한국교원대, 충청대등 6개 대학은 최근 청주흥덕경찰서와 ‘주폭 척결 및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경찰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환영회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음주 관련 사고예방을 위해 교육에 나서기로 했다. 대학은 학교에 주폭 척결 플래카드를 내걸고 캠페인 등을 펼치기로 했다. 학생회는 폭음과 강제로 술 마시게 하기 자제, 취한 동료 집까지 바래다 주기 등의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zino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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