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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카다피, 뭘 믿고 버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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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50㎞ 떨어진 자위야에서 시민군이 탱크를 둘러싸고 ‘카다피 축출’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위야 로이터=연합뉴스]

시민군의 선전으로 곧 명운을 다할 듯했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정권이 서방 측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시민혁명으로 무너진 이집트·튀니지와는 다른 독특한 요인들이 카다피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고 본다.

 우선 정규군이 미약한 탓이 크다. 리비아의 정규군은 7만5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군사 쿠데타를 우려한 카다피가 군을 육성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친·반정부 세력 간 무력충돌 과정에서 군이 균형추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군과 경찰의 힘으로 국가를 통치했던 이집트 무바라크가 군의 개입에 밀려 붕괴된 것과 다르다.

 중동 전문가인 오마르 아슈르 영국 엑서터대 교수는 “상당수 군인이 시민군 편으로 돌아섰지만 카다피의 직속 병력인 2만여 혁명수비대 등 친위부대의 동요 조짐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군은 9.5t의 겨자가스 등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6남 카미스가 이끄는 최정예 부대에 아프리카 각국에서 활약한 용병 부대를 동원할 수 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정권을 유지했던 이집트와는 달리 리비아에선 서방 입김이 신통치 않다는 것도 큰 차이다. 최근 서방 석유회사로 하여금 리비아 유전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2000년 전까지 리비아는 반서방 국가였다. 최근에도 풍부한 석유로 무장한 리비아는 서방의 경제적 지원 없이도 독자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근대 국가적 정치 시스템이 아닌 부족연합 형태로 통치돼 온 점도 관계가 있다. 리비아는 카다피가 족장으로 있는 ‘카다파’ 등 14개 대부족이 연합 통치해 왔다. 이를 이용, 카다피는 현 상황을 정부 대 시민 구도가 아닌 카다파족 대 여타 부족의 싸움으로 몰고 가고 있다. 현 사태는 시민 대 독재정권 간 대결이 아니므로 정통성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카다피는 주장한다.

 자식들 간 집안싸움이 불거진 무바라크 일가와 달리 막강한 세력을 구축해온 카다피의 8남1녀가 일치단결해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둘째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은 미디어를 통해 일관되게 시민군에 대한 강경 진압을 촉구했다. 셋째인 사디(특수부대 사령관)와 넷째 무타심(국가안보보좌관), 여섯째 카미스(32여단 사령관) 등은 군을 장악하고 있다. 카다피 이후 정권을 접수할 대안이 없다는 점도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데이비드 앤더슨 옥스퍼드대 교수는 “야당이 미약하고 군도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없어 카다피가 물러날 경우 권력 공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 재산 169조원”=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이후 각국의 전방위 압박이 시작됐다. 영국은 지난달 27일 자국 내 카다피 일가 자산을 동결하고 이들의 외교적 면책특권을 박탈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카다피 일가가 지난주 런던의 개인 자산 운용가에게 30억 파운드(약 5조5000억원)를 예치했다”며 “카다피가 돈을 각국 비밀 계좌로 옮기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dpa통신은 “카다피 일가의 자산은 1500억 달러(약 169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이집트 검찰은 28일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집트 검찰의 아델 엘사이드 대변인은 무바라크 일가에 대한 재산 동결 조치도 함께 취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충형·남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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