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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82)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단식, 개안수련 6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이사장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지요? 나를 모함한 사람, 내 돈 떼먹은 사람, 나보다 더 출세한 사람, 더 부자 된 사람, 나를 욕하고 무시한 사람……. 아닙니다. 먼저 용서해야 할 사람은 여러분 자신이에요. 모함을 당한 바보 같은 나, 돈을 떼먹힌 모자라는 나, 더 출세하지 못한 연약한 나, 부자가 못 된 게으른 나, 무시당하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소심한 나를 용서하라 그 말입니다. 모함 좀 당하면 어떻고, 바보 같으면 또 어떤가. 모자란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선 남을 용서할 수 없고, 남을 용서할 수 없으면 의식의 개안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용서해야 할 것은, 물질입니다. 재물요. 여러분이 가진 것도 용서하고, 못 가진 것도 용서해야지요.

물질은 눈이 없고 영혼이 없어요. 여러분이 가진 것, 안 가진 것 모두가 애당초 여러분의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갖지 못한 물질, 돈, 금은보석, 집과 땅, 원망하면 할수록 내 몸만 망치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걸 알아야 해요. 집착을 놔버리면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신을 용서하세요. 예수를 용서하고 부처를 용서하고 천왕신을 용서하고 마호메트를 용서하고 조상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신이 여러분을 버린 게 아니에요. 고통에 빠지는 것도 신 때문이 아닙니다. 나를, 물질을, 그리고 신을 용서하는 이것을 나는 삼관용(三寬容)이라고 부릅니다. 삼관용이 선행되지 않으면 개안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아요!”

구선법의 두 번째를 이사장은 삼망실(三忘失)이라 불렀다.
하나는 ‘개안수련’이라 하지만 꼭 수련을 통해 ‘눈’을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욕망을 잊으라 했고, 둘은 이제까지 세상에서 쌓아온 모든 인연과 관계를 잊으라 했고, 셋은 살고 죽는 것, 나를 괴롭히는 내 병도 잊으라 했다. 개안수련이라 해서 내가 단식기간에 뭔가를 이루려 욕망한다면 단식 중에도 계속 독을 품고 있는 셈이고, 두고 온 가족이나 원결(怨結)로 이어진 사람들을 마음 안에 품고 있으면 그 또한 해(害)가 될 것이며, 병을 잊지 않으면 내 몸에서 병이 떠날 방도가 없으므로 역시 자충수를 두는 셈이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삼은공(三恩功)을 받아들이세요.”

이 대목에서 이사장의 눈빛이 더욱 깊게 빛났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은혜요, 둘째는 이 시간에 살아 있는 은혜요, 셋째는 이곳에서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은혜입니다. 놀라운 공덕이지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여러분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 시간에 살아 있지 않다면 내가 어찌 여러분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며, 또 이곳 명안진사가 아니라면 내가 어찌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여러분과 내가 하나의 카르마로 얽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이곳은 내가 주인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우연히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서로 맺어져 있어요. 맺어져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셔야 개안수련의 효과를 키워요.”

사람들의 얼굴에 감동의 물결이 지나갔다.
일어나 이사장에게 큰절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사장의 설법이 끝나자 흰 드레스를 차려입은 애기보살이 플루트를 연주했다. 명상음악이라고 했다. 미소보살이 딸의 연주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듣고 있었다. 미소보살은 건강해 보였고, 애기보살은 여전히 청명하고 생생해 보였다. 미소보살에겐 남편이, 애기보살에겐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것 같았다. 개안수련은 이미 중반을 넘기고 있었다.

6일쯤 되자 단식원엔 종일 적막뿐이었다.
앉아서 하는 명상이 누워서 하는 와공으로 바뀌고 몸이 무거워 움직이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풍욕은 물론 족탕조차 누워서 하는 사람도 생겼다. 빙의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했다. 원망(怨望)과 원망(願望)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밟고 밟히는 서열이 지배하고 있었고, 경쟁은 가속적이었으며, 그리하여 상처는 필연이었다. 알고 보면 몸은 물론이고 영혼의 살 속에도 피고름이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오갈 곳 없는 불쌍한 원귀(寃鬼)들이 만만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만 끝없이 들러붙어 있었다. 강인한 적(敵)들에겐 달라붙지도 못하는 원귀들이라고 백주사는 말했다. 약한 자, 못난 자, 아픈 자야말로 빙의령의 숙주가 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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