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 달려온다…아시아 경협자금 바탕으로 투자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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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제협력은행(옛 수출입은행)의 경협자금을 동원한 일본 기업들의 한국진출 움직임이 물밑에서 활발하다.

최근 일본의 M종합상사는 한국 기업이 매각하려는 민자 발전소 2곳의 인수를 타진하면서 "인수 대금은 경협 자금에서 지원받을 계획" 이라고 밝혔다.

노후한 일본내 공장을 폐쇄하고 울산 공단의 중견 섬유업체를 매입하려는 재일동포 사업가 L씨도 "경협자금에서 7백만달러 정도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일본 민간방송업계도 한국의 통합방송법 통과에 따라 한국 진출을 모색 중이다. 일본의 C방송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2조6백억원 규모의 디지털TV 설비투자를 위해 일본 국제협력은행에서 대규모 차관 도입을 타진 중" 이라고 전하며 "차관이 도입되면 일본 방송의 한국진출 규제도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일본 업계는 인수 대상 한국 기업도 그간의 유화.금속 등 장치산업 외에 섬유.전자.철강 분야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로펌(법률회사)에는 한국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위한 일본 기업인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엔화 강세로 일본 기업들의 한국에의 투자비 부담이 크게 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본 국제협력은행이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연리 2.2%, 만기 7년 수준의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

이른바 '신 미야자와 플랜' 으로 불리는 이 돈은 98년 10월부터 2년 동안 아시아 각국에 3백억달러가 지원될 예정. 한국에는 40억달러가 이미 배정, 집행됐다.

일본 닛코 금속이 LG산전의 동(銅)제련 부문을 인수할 때와 일본 도레이가 새한의 폴리에스테르 필름부문을 인수할 때 이 자금을 이용했다.

일본측은 나라별로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정해놓지 않고 있으나 내심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가 급속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쪽에 많이 배정한다는 분위기다.

일본 국제협력은행은 "한.일 공동프로젝트에는 충분한 자금을 신속히 지원한다는 방침" 이라고 말했다.

이미 제공한 40억달러와 현재 협상 중인 유화 빅딜 관련 10억달러 외에도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더 풀겠다는 것. 한국 기업들도 일본 업체와 합작 유치 때는 이 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일본측이 제공하는 경협자금 대부분이 언타이드론(원자재 수입의무 등의 융자 조건이 붙지 않는 대출금)이어서 한.일 양쪽에서 신청기업이 쇄도하고 있다" 고 전했다.

일본 국제협력은행은 또 ▶올 초 아시아지역 민간 기업에 2조엔을 추가 지원키로 약속한 데 이어 ▶지난달엔 아시아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새로운 자금 지원방침을 밝혀 한국에 돌아올 '파이' 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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