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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우리만 식량난 아냐"대대적 선전

중앙일보

입력

북한 당국이 '세계가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는 선전을 대대적으로 펴고 있다. 전세계에 식량원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는데다 주민들의 집단 저항 움직임이 포착되자 이같은 선전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선전을 통해 식량난이 자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주민 달래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민주조선은 24일 '세계적인 식량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얼마 전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식량가격보고서를 발표하여 현재의 세계 식량가격이 1990년 이후 최고로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고난의 행군이 있던 90년대보다 더 심각한 식량난이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 식량전문가들은 식량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식량쇼크가 원유쇼크보다 더 심각한 경제문제로 될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이들 매체는 또 "최근 시기 가물과 폭우, 강추위를 비롯한 이상기후현상이 오스트랄리아, 남아메리카, 로씨야, 중국 등 세계 곡창지대를 휩쓸었다"며 식량위기의 원인이 이상기후임을 강조했다.

특히 "식량위기에 대한 세계적인 우려가 커가고 있는 속에 식량수출을 금지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외국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못받는 원인이 전세계적인 식량난에 따른 식량보안 때문이라고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처럼 오늘 세계가 심각한 식량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자국의 리익만을 추구하면서 막대한 량의 강냉이를 생물연료생산에 쏟아붓고 있어 국제적인 비난대상이 되고 있다"며 화살을 미국으로 돌렸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에만 '로씨야재정상 올해 세계적으로 식량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고' '세계식량위기를 더욱 격화시키는 생물연료생산' '세기를 이어 빛나는 사회주의 농촌테제' '(중국의)수상남새(채소)생산기지' 등 식량난과 관련된 기사만 5개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에 앞서 20일에는 "세계적으로 식량가격이 계속 뛰어올라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며 "국제식량시장들에서 밀가격은 지난해 4/4분기 대비 20%, 강냉이 가격은 12% 또 인상되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식량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전세계적으로 4400만명의 인구가 극심한 빈곤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방송은 8일에도 "유럽동맹(EU) 성원국들에서 물가가 계속 올라 주민들이 생활난을 겪고 있다"며 "유로를 사용하는 동맹 성원국들에서 지난해 12월 도매가격이 그전 같은 달에 비해 5.3% 또 인상됐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도 가세했다. 노동신문은 20일 "제반시설은 식량을 어데가서 가져 올 데도 없고, 선뜻 주겠다느 나라도 없으며 따라서 매개 나라에 있어서 방도는 오직 하나, 자기의 땅에서 농사를 잘 지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체코를 비롯한 식량원조를 요청했던 국가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하자 이를 공개하지는 못하고 주민들에게 식량증산을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은 23일 '농업발전에 힘을 넣고 있는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중국 국무원 판공청이 최근 당면한 가물막이사업을 잘한데 대한 통지문을 하달했다"며 "농업부도 긴급통지문을 하달해 관개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이 진척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길림성에서는 농경지 수리공사를 힘있게 다그칠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한 뒤 "나라의 식량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중국정부와 인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은 앞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 외면에 인도적 지원마저 뚝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 등은 북한은 올해 87만~10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최근 잇따라 내놨다.

하지만 국제적인 원조는 기대하기 힘들다. 북한에 대한 지원금이 회원국들의 외면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유엔아동기금(UNICEF)의 북한 지원사업을 위한 예산모금액은 목표액의 6%대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UNICEF의 대북사업을 위한 모금 목표액은 2900만달러였다.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모금된 돈은 6.6%인 180만달러에 불과하다. UNICEF는 이를 메우기 위해 회원국과 개인 기부자들에게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세계기금(스위스 제네바 소재)이 말라리아와 결액을 위한 대북사업비로 1700만달러를 보내왔을 뿐이다.

UNICEF측은 "북한의 어린이와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영양사업을 비롯한 보건과 의료사업, 상하수도설비와 교육사업 등 수년간 해오던 인도주의 사업이 지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체코와 폴란드는 최근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지원에 부정적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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