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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던 핵주먹 타이슨 “비둘기 키우며 착하게 살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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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세상을 향해 으르렁대던 타이슨의 삐뚤어진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건 어린 시절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비둘기였다. 타이슨은 요즘 미국 네바다주에서 경주용 비둘기를 키우며 새 삶을 살고 있다. 새장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던 타이슨의 한때. [뉴욕 게티이미지]


1978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의 빈민가. 작고 검은 소년의 손은 비둘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소년은 비둘기를 가슴에 품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 찢어진 눈매에 어눌한 말투.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의 친구는 비둘기가 유일했다. 그런데 소년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또 다른 소년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 그에게 다가왔다. 소년이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비둘기를 낚아채 목을 꺾어버렸다. 그렁그렁 소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다시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또 다른 소년은 꼬꾸라져 있었다. 소년이 누군가를 때려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1년. 중년이 된 소년은 투박하고 검은 손으로 다시 비둘기를 움켜쥐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크 타이슨(45). 22일(한국시간) 인터넷 야후스포츠의 스포츠 전문 칼럼니스트 케빈 롤은 타이슨이 최근 네바다주 헨더슨에서 경주용 비둘기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타이슨은 스스로를 ‘네바다 아저씨’라고 부른다. 수년간 중독됐던 마약도 하지 않는다. 그는 롤에게 비둘기를 키우는 이유를 “평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화. 사실 타이슨의 삶과 이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삶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타이슨이 두 살 때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다.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생활을 꾸려가야 했던 그는 여느 빈민가 아이들처럼 소매치기를 하면서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유일한 희망은 복싱이었다. 타이슨은 소년원에서 복싱을 배웠다. 이 시기 전설적인 복싱 트레이너인 커스 다마토를 만났다. 그의 나이 13세 때다.

 다마토를 아버지처럼 따른 타이슨은 착실히 복싱 훈련을 한 끝에 19세에 프로로 데뷔한다. 데뷔 후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은 1986년 트레버 버빅을 KO시켜 세계권투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세계권투협회(WBA)·국제권투연맹(IBF) 타이틀을 잇따라 거머쥐며 3개 단체 통합 챔피언이 되었다. 그가 WBC 챔피언에 올랐을 당시 나이는 20세4개월22일. 역대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기록이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타이슨은 스스로 무너졌다. 그는 1992년 미스 블랙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참가한 여성을 성폭행했다. 사실 여론은 그 전까지도 크고 작은 사고를 쳤던 타이슨의 악행에 관대했다. 그의 재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폭행으로 타이슨이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여론은 싸늘히 식어갔다.

 한번 삐뚤어진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95년 3월 타이슨은 가석방 된 후 이듬해에 가진 경기에서 WBC·WBA 타이틀을 차지하며 재기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경기에서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면서 다시 나락으로 빠졌다. 1년 만에 다시 홀리필드와 재대결했지만 귀를 물어뜯는 기행으로 ‘핵이빨’이란 조롱을 들었다.

 생활고도 겹쳤다. 마약에 빠져들며 돈을 물 쓰듯 방탕한 사생활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파산 신청을 냈다. 대전료를 받기 위해 이종격투기 무대에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2009년에는 영화 ‘행오버’에 카메오로 출연한 뒤 “약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영화에 출연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비둘기를 품고 나타난 타이슨은 세상을 향해 으르렁댔던 자신에 대해 고백했다. 그는 롤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껏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내 잘못된 행동을 싫어했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곳에서 비둘기를 기르며 사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란 걸 새삼 깨달았을까.

 타이슨의 비둘기 사육기는 다음 달 7일 미국 케이블 채널 ‘애니멀 플래닛’을 통해 6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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