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런 정보기관 믿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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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인도네시아 무기구매 특사단의 롯데호텔 숙소에 괴한들이 침입한 사건은 국제적으로 미묘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국정원이 경찰에 대해 수사보안을 요청한 점을 보면 이번 사건에 국정원이 연루됐을 개연성이 크다. 인도네시아는 국정원이 연루됐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사안이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사안의 윤곽이 좀 더 드러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수 명의 장관급이 포함된 외국의 무기구매 사절단이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시간에 괴한들이 불법으로 그들의 숙소에 들어가 노트북 컴퓨터에 접근한 일을 국제사회에서는 결코 우연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협정이나 거래를 위해 한국과 교섭하는 외국의 기관이나 기업은 한국 정보기관의 개입 가능성을 경계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국정원 직원들의 소행이라면 이는 한국 정보기관의 국제적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무리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도 국익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보활동을 한다고 항변해 봐야 불법 활동을 합법이라고 뒤집을 수는 없다. 통상적인 정보 활동이었다 해도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작전과 사후 관리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이런 허술한 정보기관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걱정이다.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안보위협 요소가 증대되면서 어느 때보다도 정보기관의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도 신뢰는커녕 그 조직의 기강과 능력까지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사건의 국제적 파문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이미 파문이 커진 만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줘야 한다. 또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도 강구해야 한다. 정보기관에 대한 기대가 흔들리면 안보가 위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