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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순씨 유족 “천사 어머니 나눔DNA 물려받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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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 최양순씨(오른쪽)의 생전 모습. 딸 이윤주씨(왼쪽)는 어머니의 유산 1억5000만원 전액을 한국기아대책 등에 기부했다. [이윤주씨 제공]

엄마는 살아생전 “5억원만 모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매일 아침 동태탕 가게 문을 열던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뜬 지 일곱 달이 지났다. 엄마의 통장에서 발견된 1억5000만원. 가족은 엄마가 고이 모아둔 이 돈 전부를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들과 천사가 된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다.

 지난 17일 서울 청담동 기아대책 사무국에서는 ‘고(故) 최양순 유산기부금 전달식’이 열렸다. 인천 송도에 사는 최씨의 딸 이윤주(29)씨가 후원자로 나섰다. 최씨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7개월간의 투병생활 끝에 지난해 7월 세상을 떴다.

이날 이씨는 최씨가 남긴 돈 중 5000만원을 기부해 한국 기아대책 역대 최대 유산기부 후원자가 됐다. 기아대책 정정섭 회장은 “가족을 잃은 큰 슬픔 속에서도 기아대책 유산기부 캠페인에 동참해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씨는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나머지 1억원은 최씨가 다니던 인천의 한 교회에 기부했다.

 가족들은 엄마의 빈자리를 나눔의 따뜻함으로 채우고자 유산 전액 기부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엄마를 잃은 충격에 가족 모두가 백지 상태였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평생 못 이루고 간 것을 대신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딸 이씨는 최씨가 생전에 “5억만 벌어서 기부하고 헌금하고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언도 없었지만, 엄마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모아온 이 돈을 어떻게 다른 데 쓸 수 있겠어요.” 이씨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동태탕 집을 운영하던 아내의 예금통장에서 몰래 모아온 돈 1억5000만원이 발견되자 남편 이규강(60)씨는 부인의 유산을 모두 딸에게 위임했다. 어머니의 ‘나눔 DNA’를 닮아 평소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던 딸이 유산 전액 기부를 결정했고, 아버지와 남동생 이종민(26)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전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 이씨는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마음을 먹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내는 앞으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떠났다”고 말했다.

 이씨 가족이 기아대책에 기부한 5000만원은 필리핀 안티폴로 파그라이 지역에 있는 학교 증축 및 개보수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 학교에는 빈민가 학생 약 200명이 재학 중이다.

캐나다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딸 이씨는 “앞으로 아프리카 등지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라며 “올해 7월 중 아버지와 함께 직접 필리핀을 방문해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전 재산 기부도 아닌데 이렇게 알리는 게 부끄럽지만, 우리 가족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 바이러스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딸의 웃는 얼굴이 엄마를 닮아 있었다. 문의:한국 기아대책 02-2085-8331.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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