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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몰락, 손자 죽음서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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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러나 때로 그 원인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83) 전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가 허물어진 게 열두 살 손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라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한국판 2월 23일자)가 보도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손자 무함마드와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이 무바라크 자서전 표지에 실렸다.

잡지에 따르면 현대판 이집트 왕조를 세우려던 무바라크의 원대한 계획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건 애지중지하던 장손(長孫) 무함마드(당시 12세·장남 알라의 첫아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2009년 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바라크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함마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무바라크의 돌처럼 굳은 표정도 손자 무함마드 앞에서는 인자한 미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애교가 많은 무함마드는 무바라크에게 통치를 계속할 힘을 줬다. 무함마드는 대통령궁 공식 사진에 할아버지와 함께 자주 등장했다. 축구경기를 볼 때도 무바라크의 옆자리는 늘 무함마드의 차지였다.

 그해 5월 중순 할아버지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부모 집에 돌아간 무함마드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그러곤 혼수상태에 빠졌다. 무바라크는 곧바로 손자를 프랑스 파리의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무함마드는 며칠 뒤 뇌출혈 로 숨졌다.

 큰 충격을 받은 무바라크는 워싱턴에서 예정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까지 취소했다. 며칠 뒤 오바마 대통령이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아랍권에 대해 역사적인 연설을 했지만 무바라크는 그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다.

손자 무함마드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대통령 놀이를 하듯 전화를 거는 모습.

 이집트 국민들은 대통령의 상심을 동정했다. 무바라크에 대한 동정은 지지로 바뀌었다. 무바라크의 한 측근은 “당시 무바라크가 하야를 선언했다면 국민이 오히려 더 있어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손자를 잃은 충격에 정권 장악력을 잃어간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몇 주 뒤 무바라크를 인터뷰한 이스라엘의 언론인 스마다르 페리는 “그의 정신은 말짱했지만 전에 빛나던 안광(眼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손자의 죽음으로 무바라크는 국정에도, 대통령직에도, 자신의 미래에도 흥미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돌파구(명예로운 퇴진)를 찾을 방향감각까지 잃었다고 뉴스위크는 분석했다.

 실제로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려 했던 차남 가말조차도 믿지 않았다. 무바라크가 정치 명가인 ‘이집트판’ 케네디·부시 일가를 만들기 위해 후계자로 내세운 가말은 사업가로서의 능력은 탁월했지만 카리스마와 소통능력이 없었다.

 그때부터 무바라크 정권의 실질적 보루였던 군부와 비밀경찰도 가말에게 등을 돌렸다. 무바라크의 보좌관들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랫동안 정보책임자였던 사프왓 샤리프였다.

 무바라크는 1월 25일(현지시간) 시작된 18일간의 시민혁명으로 지난 11일 권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기득권층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될지 모른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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