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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사고, 지적 포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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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주 자아비판 보고서를 내놓았다. 세계 금융위기를 맞기까지의 IMF 역할과 관련해 IMF 내의 독립평가국이 내놓은 이 보고서는 IMF가 국제경제의 위험요인에 대한 경고 및 시정을 촉구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중에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이런 실패를 가져온 요인으로 IMF 내의 ‘집단사고(group think)’, ‘지적 포획(intellectual capture)’을 꼽고 있는 점이다. 과거 IMF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필자에게 이는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된다. 길 건너 있는 자매기관인 세계은행에 비해 IMF는 조직과 업무집행의 효율성이 높은 반면 직원들의 사고와 정책분석의 획일화라는 면에서 훨씬 강한 단점을 안고 있다.

 그래도 IMF가 이런 자아비판서를 내놓은 것은 이 기관에 대한 향후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집단 사고는 어느 조직이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 조직이나 집단의 보편적 생각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그 조직에서 커나가기 어렵거나 스스로의 적응을 위해 다수의견에 동화해 버려 소수의견이 옳을지라도 이것이 조직적으로 외면돼 버리게 된다. 지적 포획은 지식인들, 특히 오늘날 경제학자들에게 무거운 성찰을 요구하는 단어다. 어찌 보면 이는 집단 사고보다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지식인들의 주장이 결국 그 시대 제도와 정책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이는 장래 사회의 흐름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 잡은 신고전파 경제학과 특히 영미의 주요 대학과 주요 학술지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시장의 효율성과 인간의 경제적 선택행위의 합리성을 너무나 당연시해 시장 맹신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시장 맹신주의가 학계와 언론, 정부, 의회, IMF와 같은 국제기구의 핵심부를 포획하면서 1970년대 이후 금융시장에서 규제완화를 가속화시켰고 이것이 지속돼 온 결과가 세계 금융위기로 나타났다는 반성이 최근 금융경제학자들 간에 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함정은 우리의 곳곳에 퍼져 있다. 경제분야뿐 아니다. 외교·안보·사회정책 분야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뿐만이 아니다. 기업과 언론사도 이러한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편을 갈라 싸우는 곳에 이러한 집단 사고의 함정은 깊다. 편이 나뉘어 싸우는 곳에서는 상대방을 제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과 차별적인 생각으로 무장하고 그러한 주장을 되풀이하다 보면 스스로 그 주장의 틀에 포획되어 가는 것이다.

 대학이나 기업이나 언론사가 이러한 함정에 빠져 현실과 괴리된 비평과 제품을 내어놓을 때 그래도 위험성은 덜하다. 시민들은 이들을 외면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민들이 달리 선택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공조직들이 이런 함정에 빠질 때 초래되는 결과다. 우리나라의 정부부처, 중앙은행, 금융감독기구도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견제장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원의 기능이 바로 이런 면을 주시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고, 각급 보직에 외부인사의 수혈을 늘리고 이들과 젊은 직원들의 새로운 사고를 조직이 흡수하는 장치들을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과 같이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엔 그 기관에서 훈련받고 자란 사람들의 시각만으론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닥친다.

 아마도 이런 집단 사고를 가장 경계해야 할 곳은 정권과 청와대일지 모른다. 선거를 통해 상대방을 매도하고 상대방과의 차이점을 부각해 표를 얻어야 하는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의 집권 과정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쉽게 집단 사고의 그물망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내편과 네편을 갈라 싸우면서 똘똘 뭉쳐 상대방의 생각과 의도를 제압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며 더욱 더 내편의 보편적 사고의 포로가 된다. 집권 후 5년이란 짧은 임기 내에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초조감은 이러한 성향을 더 부추긴다. 그러나 좀 더 길게 보면 이는 승리가 아닌 패배의 요인이 된다. 이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역시 대통령 자신이다.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효율성 뒤에는 집단 사고라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 접근이나 경제운용 방식도 혹 이러한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