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놀고 먹는 복지’ 끝장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영국의 복지 제도가 수술대에 올랐다.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사진) 영국 총리는 17일(현지시간) 복지개혁법안을 발표했다. 일하지 않으면서 의사의 진단서만 갖고 실업수당을 타먹는, ‘진단서(sick-note) 문화’를 끝장내겠다는 게 핵심이다. ‘일하는 복지’를 이뤄내지 않으면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나라 살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 법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야심차고 근본적이며 급진적인 개혁안”이라며 “다시는 일하는 게 잘못된 경제적 선택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안은 조만간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복지개혁법안은 복지수당을 받는 사람이 취업에 성공했을 경우 실제 소득이 늘어나도록 세제를 뜯어 고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복지수당 수급자가 근로소득이 있으면 증가한 소득에 대해 세금이 붙어 심하면 복지수당을 받는 것만 못한 경우도 있었다.

 법안에는 일하기를 거부하는 실업자에게 최대 3년간 실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내용도 포함됐다. 장애인수당을 받을 수 있는 요건도 엄격하게 만들었다. 소득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주던 어린이수당도 앞으로는 고소득 가정에는 주지 않을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실업·주택 수당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을 하나의 보편적 혜택으로 통합해 한 가정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2만6000파운드(약 4700만원)를 넘지 않도록 했다.

 캐머런 총리의 복지제도 개혁은 건강보험 개혁과 정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와중에 나왔다. 영국의 보수·자민 연정은 정부기관 예산을 최대 25%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호황기에 실시하는 복지제도 개혁을 불황기에 실시하는 건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영국의 실업률은 7.9%였으며, 특히 청년 실업률은 20.5%였다.

 캐머런 총리는 “한 해 복지 지출로만 900억 파운드(약 162조원)를 쓴다”며 “이는 정부 지출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재와 같은 경제환경에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그는 복지제도 개혁으로 앞으로 4년간 55억 파운드(약 10조원)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경제가 좋을 때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됨에도 약 500만 명이 여전히 실업수당을 받는다”며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늘어난 일자리의 40%는 해외 이민자들이 채웠다”고 말했다.

 노조와 장애인·홈리스 옹호자들은 복지제도 개혁에 반발했다. 조합원 620만 명으로 영국 최대 노조인 노동조합회의(TUG) 사무총장 브렌든 바버(Brendan Barber)는 “장기 실업률이 두 배로 치솟은 건 일하지 않으려는 게으름뱅이가 갑자기 늘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지출 축소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