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바마 칭찬한 오바마 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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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다. 그가 13일 미국 NBC방송에서 오바마를 변호했다. 이집트 사태와 관련해 “어려운 상황에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야당 지도자인 베이너가 이집트와 관련해 우왕좌왕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오바마를 감싼 것이다. 베이너는 대신 사태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정보기관에 대해서는 “재평가해야 한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미국 언론이 더 주목한 베이너의 발언은 ‘오바마는 미국 시민이며, 기독교인’이라고 확인한 대목이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미국인 20% 내외가 ‘오바마는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본인이 아무리 ‘나는 기독교인’이라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는 정치적 반대세력들이다. 오바마가 9·11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회교 사원을 짓는 것에 찬성하는 등 ‘친무슬림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과 맥을 같이하는 민감한 문제다. 이런 핫 이슈에 대해 베이너가 오바마 편을 든 셈이다.

 베이너의 이런 태도는 그가 보여온 정치적 강성 입장을 감안할 때 더 돋보인다. 베이너는 지난달 19일 여소야대 하원이 문을 열자마자 오바마가 최대 업적으로 자랑해 온 ‘건강보험개혁법’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날은 오바마가 중국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주석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세기적인 정상회담을 한 날이다. 베이너는 이날 만찬 초청도 거부했다.

 반(反)오바마의 상징인 베이너가 오바마를 변호한 것은 성숙한 정치인의 자세로 주목된다. 정책에선 대립각을 세우지만, 외교에선 목소리를 같이하고, 나아가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긋는 모습이다. 베이너가 건강보험개혁법을 폐지한 것은 ‘작은 정부’와 ‘재정적자 감축’이라는 공화당의 공약 이행이다. 이집트 사태에 대응하는 오바마의 외교전략은 미국의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이었다. 베이너는 이처럼 국익 앞에서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보수 공화당 리더인 베이너가 오바마를 무슬림이라 매도하는 강경 보수파들에게 ‘노(No)’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다.

 베이너의 발언은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연히 열어야 할 국회 문을 여는 것을 두고 아옹다옹하는 여야 정치권의 모습은 좀스럽다. 영수회담이니, 청와대 회담이니 만남의 이름을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다가 결국 만나지 못하는 정치 실종도 답답하다. 한 꺼풀 들여다보면 여야 당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개헌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은 사분오열(四分五裂)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딴소리 하느라 대여 협상이 오락가락한다.

 정치인들은 베이너에게 배워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날이 되면 국회를 열고, 당의 노선에 따라 다른 정책 관련 이견은 표결로 정하면 된다. 대외적인 사안이면 국익을 위해 힘을 모으고, 본질과 무관한 인신공격성 발언은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