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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운드 줄다리기] 중국 WTO 가입은 피할 수 없는 모험

중앙일보

입력

중국과 미국은 지난 13년 간 회담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헤어날 방도를 찾아내곤 했다. 지난 10일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베이징(北京)
회담 일정도 처음에는 이틀 정도로 예상됐다. 양국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정지 작업을 위한 협상이 필요했다. 12일 저녁 샬린 바셰프스키 美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진 스펄링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의장은 아무 합의점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짐을 꾸리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튿날 아침 협상 테이블에 다시 나타났다.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밤에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만 해도 양국의 무역 협상이 완전히 결렬된 것처럼 보였다. 당시 朱총리는 일단의 양보안을 들고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朱의 양보안을 공표한 뒤 갑자기 이를 거절했다. 빈 손으로 중국에 돌아간 朱는 강경파의 집중공세에 시달렸다. 미국 재계도 격분했다. 수년 동안 對중국 진출을 노려왔고 어느 때보다 유리한 조건을 중국측이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제안에는 거의 완전히 문을 닫아온 통신 분야는 물론 또다른 민감한 부문인 금융 서비스 개방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외국기업에 사업 확장시 필요한 서비스·유통망 운영도 허용할 것이라는 공약까지 있었다. 그러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그 제안으로 의회를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軍이 유고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을 오폭한 5월 7일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클린턴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협상재개에 합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희망이 다시 엿보이기 시작했다.

클린턴으로서는 이번 협상이 對중국 정책과 세계무역 정책의 주요 업적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과의 협상이 타결되면 다른 무역 상대국들과도 쉽게 협상을 타결할 수 있으며 WTO가 세계무역 체계 규정을 다듬고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타결이 중국의 개혁에 추진력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朱와 그의 제휴세력은 개혁을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

중국의 경제·사회가 WTO 규정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낙후된 농업부문과 과보호 아래 있는 자동차산업, 국유기업이 외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경제학자 쭤다페이(左大培)
는 지난 4월 朱가 제시한 양보안을 듣고 “그렇게 양보하지 않고서 WTO에 가입할 수 없다면 아예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최근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에 대한 탄압이 보여주듯 중국 정부는 사회불안을 크게 두려워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개혁으로 도시에서 해고노동자들이 더 늘어나고 농촌에서는 불만이 고조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로서는 WTO 가입이 피치 못할 모험인 것 같다.

Leslie Pappas in Beijing
뉴스위크 한국판(http://nwk.joongang.co.kr) 제 405호 199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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