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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제2의 밥’ 밀가루가 졸업식에 뿌려지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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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조원량
한국제분협회 전무

2월은 학교마다 졸업식으로 분주한 달이다. 졸업식은 소정의 과정을 마친 뒤 높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의식이다. 노력의 열매를 축복받으며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보은의 행사다. 하지만 축복과 보은의 행사인 졸업식에 일부 학생이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고 교복을 찢는 등 비뚤어진 행동을 해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에는 ‘알몸 뒤풀이’ 사건까지 일어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졸업식 탈선을 막기 위해 올해부턴 교육과학기술부와 경찰 당국까지 나서 특별방범활동을 벌인다. 슬픈 일이다.

 졸업식에서 밀가루를 뿌리는 일은 제분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참기 힘든 일이다. 스페인의 이비 지역에서는 밀가루를 던지는 축제가 2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졸업식처럼 밀가루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밀은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해 온 곡물이다. 지금도 세계 43개국 10억 인구가 주식으로 섭취하는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1970년대에는 정부 차원에서 밀가루 섭취를 장려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수를 먹고 밀가루 공장을 둘러보며 소비를 독려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은 밀가루를 대형마트, 동네 상점 등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식량 곡물의 70% 이상을 외국에서 가져와야 하는 식량 수입국이다. 특히 밀가루의 원료가 되는 원맥은 수요량의 95% 이상을 해외에서 들여온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1%가 채 안 된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밀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다. 여기에 미국 달러화 약세와 중국의 식량자원 매집이 이어지면서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 초보다 1년 새 100% 이상 뛰어올랐다. 정부는 지난해 밀가루를 ‘가격 중점 감시 대상(48개)’에 넣었다. 정부 차원에서 밀가루 소매 가격 추이를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현실적으로 밀가루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물가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밀가루조차 구하지 못해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다.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제2의 주식 밀가루를 장난처럼 뿌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원량 한국제분협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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