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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의 존재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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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환경정책의 기본은 자연보호다. 물과 흙과 공기가 깨끗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거창하게 녹생성장을 외쳐도 산하(山河)가 썩어 가면 헛구호에 불과하다. 구제역 침출수도 이런 기본을 망각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사돈 남 말하듯 한다. “전례 없는 환경 재앙이 올 수 있다”고 하더니 “축산관리를 소홀히 한 데서 오는 지하수 오염 가능성이 더 크다”며 축산농가에 화살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320여만 마리의 소·돼지를 묻은 전국 4200곳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했다. ‘소 잃고 침출수 조사’ 하는 격이다.

 환경정책은 뒷북보다 사전 조치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환경 공무원들의 열정은 예전만 못해 보인다. 4대 강 사업과 구제역 사태 대처 방식을 보니 그렇다. 환경정책의 기본은 현장이다. 하지만 현장 냄새가 나질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만 굴리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깐깐한 환경영향평가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개발하려는 국토해양부와 딴죽 거는 환경부는 ‘앙숙’으로도 불렸다. 둘의 건강한 긴장관계는 난(亂) 개발을 막는 밑바탕이 됐다.

하지만 4대 강 사업을 하면서 둘은 연애를 했다. 멸종위기식물이 뽑혀 나가도, 오수(汚水)를 멋대로 방류해도, 준설토를 방치해도 눈을 감았다. 속도전에 짝짜꿍한 것이다. 환경부의 한 공무원은 “옷 벗을 각오가 아니라면 말하기 힘들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본대로 했다가는 밉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환경부를 출입할 때가 떠올랐다. 당시 장관과 공무원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수도권 시민의 상수원인 팔당호를 맑게 한다며 강 주변 불법매립 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불법 건축물을 때려 부쉈다. 장관이 취임하면 첫 번째 점검코스가 팔당호였다. 덕분에 기자도 장관과 둘이 보트를 타고 팔당호를 둘러보는 호사를 누려봤다.

어떤 장관은 쇼를 했다. 황소개구리를 퇴치하겠다며 직접 강에 들어가 그물을 던졌다. 치킨보다 맛있다며 튀김 황소개구리 시식회도 열었다. 학생과 지자체 공무원이 대거 동원됐다. 날씨 탓에 개구리 서너 마리를 잡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망신당한 장관은 멋쩍어 했다. 하지만 엉뚱한 쇼는 효과가 있었다. 황소개구리 퇴치 전국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만큼 환경은 현장이 중요하다.

 2011년, 환경부는 기본으로 돌아가라. 무조건 살처분 매몰을 밀어붙인 농식품부의 아마추어 행정에 환경 전문가들이 뒷짐을 진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다. 좋은 대학 나와 행정고시 붙고, 외국 유학 다녀온들 ‘자연보호’와 ‘현장’ 기본기가 부실한데 무슨 전문가인가. 헛똑똑이 대처로 국토가 오염 중병을 앓게 되면 정말 큰 일이다.

4대 강 사업도 다시 현장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속도전에 발목 잡혀 훼손을 봐줘선 안 된다. 선진 녹색성장의 기본도 건강한 자연이다. 환경공무원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