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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본격 뮤지컬로는 미흡

중앙일보

입력

모든 작품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상업 연극을 표방한 경우라면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 관객이 외면하는 상업극은 실패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장진의 첫 뮤지컬 '아름다운 사인(死因)' 은 그런 점에서 한마디로 성공작과는 거리가 멀다. 연극 무대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그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톡톡 튀는 재치로 하는 공연마다 화제를 모으면서 관객을 그득그득 모아온 장진이지만 이번에는 예상과는 다소 빗나갔다. 예측 불가능한 관객들의 취향 탓도 있겠지만 이번 작품이 관객동원에 성공하지 못한 데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장진에게 있다. 스스로 상업극이라는 함정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인'은 장진이 몇 년전 대학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대본을 쓴 작품이다. 졸업반에 남학생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여자 배우 위주의 극을 생각하다 보니 자살한 여자들이 수다떠는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검시관 유화이(배종옥.김선경 더블 캐스팅)앞에 놓인 여섯 구의 시체들.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이다.

남편의 외도를 보다 못해 막걸리 사발에 농약을 타먹고 죽은 45세의 조숙자(김지영 扮), 27층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진 35세 한혜선(추귀정), 벤츠를 타고 가다 성수대교를 들이받고 병원에 옮겨지다 죽은 27세 최정미(명경수), 수면제를 다량 복용했지만 정작 알약이 기도(氣道)로 넘어가서 질식사한 31세 이수민(이미라),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맨 53세 김귀인(이용이), 아버지의 성폭력에 넌더리치다 동맥을 칼로 그은 16세 정선아(고호경)….

매우 기발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실제로 이 아이디어를 높이 사 이번에 작품을 제작한 진우예술기획 이외에 다른 단체에서도 작품화에 관심을 보였었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주변의 기대에 못 미쳤다.

시체들의 옛 애인을 보여 준다며 객석에 앉아 있는 남자 손님을 카메라로 비추는 등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배려가 눈에 띈다. 하지만 대학 졸업작품을 7백여석의 토월극장용 뮤지컬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본을 정교하게 꾸미지 못한채 기획자에 끌려다니다 보니 수작(秀作)에서 멀어지고 만 것이다.

뮤지컬이 상업적인 성공에 효과적인 장르인 것이 사실이지만 연극 대본을 뮤지컬에 맞게 수정하지 않고 대사에다 노래 몇 곡만 삽입해 완성도가 떨어졌다. 뮤지컬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본격 뮤지컬이라고 보기에는 음악적 요소가 약한 점에 실망할 수도 있다.

캐스팅도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자보다 기획자의 의견이 앞서다 보니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을 한데 엮는 앙상블이 부족했다. 김지영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조민기의 1인 7역의 변신 등은 볼만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상업극을 내세워 너무 안이하게 작업한 것이 아닌가 싶다. 2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16-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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